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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2 오후 07:54
제목
105. 우리의 clou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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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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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cloud 9>

 

비 갠 하늘이 푸르다. 햇살도 눈부시게 화사하다. 흰 구름이 떠간다. 구름! 얼마 전, <행복마을 동사섭 서울 센터>에서 ‘카페 9rm’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궁금했다. 담당자에게 어떤 성격의 모임이냐 물었더니 ‘행복을 선언하는 모임’이란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날짜와 장소를 선정하여 통보하면 불특정 다수가 모여 ‘나는 행복하다’를 선언하는 모임이라 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를 답하는 자리인 것이다. 신선했다. 정해진 연사가 있기는 하겠지만 불특정 다수가 모여 서로의 행복을 이야기한다. 얼마나 짜릿한 체험인가. 멋진 기획이다. 나도 한번 초대받은 적이 있으나 참석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카페 9rm’에서는 왜 ‘9’를 썼을까? 그냥 ‘구름’이라 해도 되었을 텐데 굳이 ‘9rm’이라 표현한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에는 언어유희일 거라 생각하다 순간 언젠가 봤던 ‘cloud 9’이라는 부제가 붙은 독일 영화가 떠올랐다. <우리도 사랑한다>는 우리말 제목의 영화였었는데 노인들의 사랑 이야기였다. 어찌 되었든 그 영화에 ‘cloud 9’을 붙인 데는 까닭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아하!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절정의 순간! 비록 노인일지라도 젊은이와 다르지 않게 사랑할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였다. ‘cloud 9’은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시원했다. 지극한 행복. 그래서 ‘카페 9rm’에서도 ‘구름’을 굳이 ‘9rm’으로 썼구나 알 수 있었다. ‘카페 9rm’ 등에서 얻은‘cloud 9’의 의미는 대강 이렇다.

 

인도 소승불교의 율장서적에는 보살 수행을 10단계로 나눈 십지사상이 있는데 그 중 9단계에 이르면 사리사욕과 욕망이 없어지고, 부처에 가장 가까운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최고 느낌의 단계인 셈이다. 또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 중 「천국(Paradiso)」 편에는 천국 아래 아홉 개 하늘이 있는데 그 아홉 번째 하늘이 행복의 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단계라 했다. 이 또한 최고를 이르는 의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신곡』으로 ‘cloud 9’의 의미를 기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기상 관측의 관측지침서인 『국제 구름 도감(International Cloud Atlas)』은 구름을 10가지로 분류해 아홉 번째 구름인 적란운을, 가장 높은 곳에 떠 있어 아름다우며 하얗게 빛나는 구름으로 나누고 있다. 즉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보면 아홉 번째 하늘의 구름은 현실에서 가장 높고 행복한 곳을 말한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cloud 9’은 이미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었다. 비틀즈 멤버인 조지 해리슨이 1987년에 이미 ‘cloud 9’이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발표하였고 하물며 우리나라 담배인삼공사에서는 담배에 ‘cloud 9’을 붙이고 있다. 게다가 영어 표현에서조차 I’m on the cloud nine은 최상의 기분 상태를 이를 때 쓴다.

 

그러면 나의 cloud 9은 무엇인가. 물론 돈망(頓忘)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다만 아직 제대로 터득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언젠가는 터득하게 될 것이라 믿고 꾸준히 노력할 것이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렇다면 지극한 행복에 드는 ‘돈망’은 무엇인가. 용타 큰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냥 있는다’이다. ‘그냥’, ‘있는다.’ 시간을 초월해 있는 ‘없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돈(頓)’은 시간의 초월을, ‘망(忘)’은 잊음, 또는 없음에서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은 허상이므로 기억되는 것을 순간에 잊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의식차원을 산다. 그렇게 의식차원을 넘나들며 사는 것이 삶일진대 돈망도 그 중 한 차원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그 많은 의식차원 중에 무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차원이 있는 것일까? 만약 그 차원이 존재한다면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인생은 뭔가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이다. 계속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세상살이인데 ‘돈망’은 그와 달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차원’이다. ‘그냥 있는’ 차원인 것이다. 이런 차원, 그러니까 ‘돈망’에 들 수만 있다면 무한 행복을 느낄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이는 만만하지 않다. 노력이 필요하다. 이 ‘돈망’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용타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른바 <돈망 3관>이다. 제1관은 ‘그냥 있는다’이다. ‘그냥’ ‘있’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으리라. 우리는 한 순간도 그냥 있지 못한다. 뭔가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현실. 그런데 그냥 있을 수 있다면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제2관은 ‘기초수를 그대로 수용하라’이다. 기초수란 지금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여기(here & now)에서 느끼는 느낌을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제3관은 ‘아공 법공(我空法空)이니 걸림 없이 깨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공 법공’이란 나도 사라지고 대상도 사라진 경지를 이른다. 즉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경지. 이는 내가 간절히 희원하는 나의 ‘cloud 9’ 경지이다.

 

고개를 빼 눈을 치켜든다. 하늘에 구름이 흐른다. 저 구름은 몇 단계쯤일까? 아직은 요원해 보이는 돈망에의 길을 보는 듯하다. 진정한 휴식,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희열을 감지할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순간이 없으리라. 큰스님 말씀 대로 이생을 살다 가면서 뭔가 한 가지 해 놓아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돈망이 아닐까. 한 번쯤 해 봄직한 일이 아니겠는가.큰스님께서 발간하신 『공』을 수시로 읽고 음미하고 명상하면 돈망의 길에 드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듯도 하다. 우리 모두 무량한 행복감을 만끽할 그날이 올 때까지 무한으로 노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

글. 한뜻님 (yso14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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