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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2 오후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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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풀 부처, 꽃 부처, 노루귀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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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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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부처, 꽃 부처, 노루귀 부처

 우리는 좋은 것은 좋아하고 나쁜 것은 싫어한다.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행복해 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불행해한다. 사람의 평생은 그 좋은 것을 쫓아 이리 저리 우여곡절을 겪는다. 좋은 것이 손에 많이 들어오면 성공한 인생이고 그것이 그다지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라 여긴다. 그러나 좋은 것을 제 아무리 많이 끌어들인다 해도 “이젠 백 퍼센트 만족”이라고 말하게 되지 않는다.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지게 될 확률이 훨씬 더 크다. 도대체 이 놈의 인생이란 것이 어떻게 되먹은 것이기에 왜 싫어하는 것을 겪어야만 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다지도 누리기가 어려운가 말이다.

기상관측사상 가장 많은 비를 퍼부었다는 태풍이 강릉을 휩쓸고 간 그 이듬해 봄이었다. 언니네 뒷산에서 노루귀의 무리를 만났다. 산은 마치 포격이라도 당한 듯 흙과 바위와 나뭇가지가 뒤범벅인데 그 사이사이에 가녀린 풀꽃들이 하늘하늘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소나무에게 일 년 내내 햇빛을 차단당하던 노루귀들이 소나무가 꺾여져 나가자 충분한 햇살에 그렇게 어여쁘게 핀 것이었다.

만약에 소나무나 노루귀가 사람이었다면 소나무들은 자기 일족에게 닥친 그 엄청난 불행에 대성통곡을 하다못해 기절했을 것이고 노루귀 가문은 그 천재일우의 행운에 환호작약하다 심장마비라도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소나무와 노루귀는 그저 하늘의 별들이 말없이 공전과 자전을 계속하듯 그저 시절 인연에 따를 뿐이다. 그것은 자연이 사람에 비해 멍청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에는 본래 좋고 나쁨이 없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바람에 부러진 것이고 노루귀는 햇빛에 핀 것뿐이다. 그이네들에겐 재앙도, 행운도 없다. 그것은 행운도 재앙도 아니고 그저 인과라는 질서일 따름이다.

사람은 싫고 좋은 것이 뼈에 사무쳐 있지만 그 좋고 나쁨이란 이 우주에서 오로지 사람만 앓고 있는 질병이다. 우주의 역사 137 억년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인간이 생겨나 ‘말’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이 우주엔 좋고 나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 무한 우주에서 티끌도 못되는 인간이 그 광대무변 천변만화의 질서를 사람이라는 바늘구멍보다도 편협한 안목으로 좋다 나쁘다로 갈라 놓고는 좋은 것만 취하려고 기를 쓴다. 그런데 천도(天道)는 무친(無親)이어서 중중연기의 모든 그물코들이 절대 평등인데 어디 사람이라고 제 뜻대로 제 좋은 것만 취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좋은 것을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밤낮 없이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이것도 성취하고 저것도 성취한다. 그런데 무언가를 가져도 가져도 끝끝내 충족되지 않는 까닭은 그 좋다는 것이 애시당초 허구이기 때문이다. 좋고 나쁨에 끄달리며 인생을 살지만 그 끄달림에서 해방되려면 좋고 나쁨 자체를 내려놓는 길밖에 없다. 그러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없이 바위덩이처럼 되라는 것인가. 아니다. 좋음과 나쁨이 사실인데도 그것을 모른다면 바위덩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좋고 나쁨이 그 근원에서부터 아예 없는 허구라면 당연히 그 허구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좋고 나쁨은 하늘이 정해 놓은 진리가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 정한 것이라는 도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내려만 놓으면 좋고 나쁨의 끄달림에서 영원히 해방된다. 그렇게 해방된 바탕 위에서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것을 그 때 그 때 취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취해지지 않는다 해도 그다지 끄달리지 않고 그것을 누린다 해도 “한 번 더”라거나 “더 많이”를 외치며 탐심을 키우는 일은 저지르지 않게 된다.

좋고 나쁜 것을 내려놓고 그냥 있어본다. 본래 이 우주에 좋고 나쁨이 없다는 이치를 깊이 명상한다. 애시당초 이 우주에 끄달릴 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애시당초 번뇌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놀랍고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좋고 나쁜 것에 목숨을 걸며 집착한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오로지 사람의 주관에 따른 - 더 정확히는 자신의 주관에 따른 - 것임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노루귀나 소나무의 우주적 평화를 맛보게 된다.

입춘이 지났으니 머지않아 노루귀가 필 것이다. 잔설 옆에서 잎사귀도 없이 가느다란 목을 올려 여린 꽃을 피우는 노루귀. 첫봄의 싸늘한 바람 속에서 불꽃놀이처럼 퍼지는 꽃술을 달고 피어나는 작은 풀꽃. 아름답다. 평화롭다 그리고 지극히 온전하다. 애시당초 좋고 나쁨을 뛰어넘어 무한 평화를 누리며 우주의 질서에 따라 그냥 피어나는 그이. 어찌 부처가 아니랴. 풀부처, 꽃부처, 천하는 부처의 세상일지니….

글, 사진.  선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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