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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후기

NO1작성일 : 2015-11-09 오후 03:49
제목
2014. 6월 정기강좌_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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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과거를 돌아보는 일도 중요하다. 
미래를 내다보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를 살펴보는 일은 진정 중요하다. 

당신은 현재 어떠한가?
현재 이대로 충분하지 않는가?
행복해탈을 위해 무엇을 더 원하는가?

나이 들어가면서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다. 
확실한 것 몇 가지:
행복해탈을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누구나 그냥 현재 이대로 넘치는 행복 속에 있다는 것, 
누구나 이대로 그냥 무한 해탈이라는 것. 

나의 제1미션은 바로 이런 것들을 천하의 심장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2014.6월
용타 합장

그리고 오늘 6월 정기강좌에서 그 말씀이 온전히 심장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아마도 오늘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의 가슴 속에도 그러한 행복해탈의 에너지가 넘치도록 스며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의 후기를 스님이 며칠전 보내주셨던 메세지로 시작한 것은 오늘 강좌 중에 스님께서중요하게  다루기도 하셨기 때문이지만 그 메세지 하나에 이토록 가슴을 적시는 감동이 스며 있는지를 다시금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일상의 바쁜 시간 속에서 스님의 문자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늘 스님의 문자는 (제가 스님이 보내시는 문자 대상자 리스트에 속해 있다는 것이 오늘의 행복마중물 1번이네요) 제 일상 어느 즈음의 풍경소리이자 숨고르기 시간입니다. 보통 때에는 꼭 답장을 보내드리고 잠시 멈춰서서 생각도 해보는데 아마도 이 ‘미션’이라는 문자가 도착했을 때에는 그러한 경종을 울려주셨음에도 멈추지 못하고 ‘참 좋은 말씀이다. 답장을 보내야겠다. 그리고 페이스북에도 많은 이들과 나눠야겠다.’ 그러한 생각들이 스쳐간채 행동으로 저지르지는 못하고는 오늘을 맞이했습니다.

그 문자 한 통 답변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다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면서 그 문장 전체를 음미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다고, 잠시 멈춰서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 나누는 것이 무엇이 어렵다고 시간을 흘려보내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스님께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정도로 그 경험이 남아 있을까요.  그런데 오늘의 강의를 통해서 다시금 문자의 의미가 다가왔습니다. 스님께 답장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잠시 멈춰서서 음미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전 그 미션을 제 심장으로 온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것이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복습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저 좋은 한 문장으로 제 바쁜 일상 속에서 사그라 들었을 순간이자 글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오늘의 강의와 이어지면서 가슴속으로 저며드는 그 행복해탈 ‘있는 그대로의 행복’ 그 충만함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럼 큰스님이 보내신 문자의 여운을 간직한채로 오늘 정기강좌의 풍경을 만나볼까요?

오늘 아침 행복 마을에는 모리님이 가져오신 허브의 향과 꽃향기로 정원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신선한 야채들을 간식으로 드리고 향긋한 허브들을 차 위에 동동 띄워서 오시는 분들을 맞이했습니다. 직접 만나보지 않고서는 그 향긋함을 상상하기 힘드실거예요. 레몬의 향이 나는 허브도 있었는데 그 상큼함이 피로회복제 같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모리님의 꽃들은 강의실을 환희 밝혀주고, 오시는 분들에게 나누어드릴 꽃다발로 참석자 분들의 얼굴도 꽃처럼 환해 지셨답니다.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스님의 강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야외 정원에서 진행되는 법문 같았어요.

한뜻님의 중후한 목소리로 오늘의 정기강좌를 열 수 있었습니다. 10분 쉬는 시간 후에는 한뜻님의 멋진 노래로 2부를 열기도 했지요.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더욱 느낀거지만 늘 그자리에 있어서 감사함을 몰랐던 것들과 사람들에게 다시금 그 감사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입니다. 늘 사회를 봐주시고 늘 담아내기 시간을 담당해주시고 늘 비디오를 챙겨주시고 늘 포스터를 인쇄해서 붙여주시고 늘 책상 배열과 의자 배열을 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고마움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저 함께 이 시간을 만들고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지 알게 된 것이지요. 
 
 
 
 
 
 
 
 
“오늘의 법문 들어가기 전에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어찌 세월호가 한 번 뿐이겠어요, 많고 많지만 바로 최근에 강하게 목격한 것은 진도 앞바다 세월호 참사입니다. 이런 참사를 접했을 때에는 이 가슴이 좀 떨려주는 것도 좋습니다. 여러분들 가슴이 혹여 크게 떨리지 않았다면 스스로를 크게 살펴봐야 합니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참사를 당하면 떨리는데 사촌이 그러면 별로다 그러면 그건 좀 문제지 않겠어요. 역사상의 무수한 세월호 참사가 있었습니다. 세월호 같은 참사가 많았지요. 아직도 어딘가에 헤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분들도 함께 안아줘 보십시다. 여러분들 상상속에서 안게 되면 여러분들의 에너지는 그 분들에게 바로 미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변하게 되면 따뜻해 집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따스히 안아주는 시간으로 법문을 열었습니다. 이러한 시간으로 조금 더 성숙해졌을거라는 스님의 말씀에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러시면서 오늘의 주제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라는 말을 다르게 말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른 모든 것들에게 영향을 준다. 이 뜻입니다. 즉,  그 말을 달리 표현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이런 말입니다. 그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이 어떤 레벨을 넘어서게 되면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어느 수위를 넘어섰어요. 그래서 큰 난리가 일어났지요. + 영향도 주고 받지만 – 영향도 주고 받지요. 이 세상이 그래요. 그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에 어떤 영향에 의해서는 기분이 좋아져요. 행복해져요. 어떤 영향은 괴로워져요. 그 영향을 주는 그 일이 고통을 주게 되면 ‘악’이라는 이름을 얻게되고 행복과 기쁨을 주게 되면 ‘선’이라고 이름 부르게 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와… 참 당연한 말씀인데 그게 왜 이렇게 다르게 다가올까요. 내가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는 한 문장 속에 이러한 엄청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구나. 그리고 너무나 당연해서 그 뜻을 잊고 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등장하고 변화가 등장하니까 뭔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을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아주 작게는 나부터 그리고 가정으로 그 다음에 직장으로 나아가며 살펴보라 하셨습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늘 만나는 사람들 사이를 생각해보세요. 늘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늘 주고받고 하지요.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사실 가만히 있어도 주는 거예요. 난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을란다 하고 있어도 소용없어요. ‘난 우리 아빠 때문에 죽겄네 숨통 막히네 난 안 줄란다’해도 존재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존재만으로도 서로 영향을 주게 생겨 있어요. 내가 똥통에서 빠졌다가 나와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떻겠어요? 악취가 주변에 나겠죠. 내 존재는 가족에게 어떨까? 한 분 한 분 떠올려 봐요. 그 분은 나로 인하여 행복해지는가? 나로 인하여 안 행복한가? 오히려 나로 인하여 도리어 지옥을 걷고 있지는 않은가? 자기 체크를 해봅시다.우선 가정부터 생각해보세요. 난 가정도 없이 혼자 삽니다 한다면 직장으로 가봐요. 난 직장도 없이 혼자서 삽니다. 그럼 커피 같이 마시는 사람들을 생각해봐요. 그런 사람도 없어요. 그러면 종로 네거리를 나가봐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로 인해 어떤가 살펴봐요. “

그렇게 우리들은 의식을 나에서 세상으로 넓혀나가 보았습니다. 저 또한 내 가족들에게 행복의 존재인가? 작더라도 기쁨을 주고 살고 있는가? 자문해 보았지요. 요새 좀 소홀했던 것들도 떠올랐지만, 나름대로 그래도 기쁨 쪽이 더 크지 않은가 자답하며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행복마을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기쁨과 행복의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나로 인해서 어떠한 기분을 느끼는지 최근의 시간들을 살피고 있었지요. 역시나 질문은 가장 큰 자극인 것 같아요. 이러한 생각을 떠돌고 있을때에 용타스님께서는 바로 질문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난 평균 기쁨 쪽일 것 같습니다. 손 한 번 들어볼까요? 손 안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많은 분들이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기쁨의 존재로 살아가고 계신 분들이셨죠. 긍정의 영향을 나누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또 질문하셨어요. 

“내가 진실하게 고백하거니와 내 존재는 내 가족에게 기쁨보다는 안 기쁨쪽일 것 같습니다. 이 분도 한 번 손 한 번 들어봐요. 
용기 있는 사람 세사람이 있네요. 방금 그 세사람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지만 용기있는 행동이였어요. 박수 한 번 쳐 줍시다.” 

늘 부정적인 답변을 하는 분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을 잊지 않으시는 큰 스님께 또 배웁니다.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자 오히려 용기가 있는 일이라면서 격려하셨습니다. 참 섬세하게 살펴지는 부분이였지요.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영향을 주지요. 그럼 우리가 여기사 해야 하는 일은 어떻게하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것이 삶의 중대한 물음이요 화두가 됩니다. 여러분들의 존재가 우선 가까운 가족들을 천국을 만드는데 기여를 하느냐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동을 위해서 기여를 하는가 생각해봐요.”

언젠가 동사섭 수련회에 참가했던 부녀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밖에서는 능력있고 돈도 잘 벌어오는 아버지였지만, 집에서는 딸의 숨통을 막히게하고 힘들게하는 아버지였던가 봅니다. 수련회에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딸이 ‘우리 아버지도 눈물이 있는 사람이구나’ 느끼기 시작하면서 부녀의 사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던 사연이 기억난다고 하셨어요.  집에 300만원 벌어다주니 난 좋은 아버지다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가족의 그 마음을 섬세하게 살필 수 있는 아버지로 달라진 것이지요.

“지구라는 세상? 우주라는 세상? 여기까지 갈 것도 없어요 내가정 내직장이 내 세상인거예요. 내가 늘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이것이 내 세상이거든 그래서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변해야 가정이 변한다.’ 내가 –로 변하면 가정은 어떻게 될까요? 지옥으로 변하겠지. 내가 +로 변하면 내 가정은 천국으로 변하겠지. 여기서의 변화는 당연히 +쪽으로의 변화를 이야기하겠지.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하기도 하겠지만 세상이 변해야 내가 변한다하는 논지도 옳아요. 그래서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하는 축을 70% 정도 생각하고 세상이 변해야 내가 변한다하는 축을 30% 정도로 가져가면 어떨까 생각해봐요.”

그리고 이 변화는 가히 단계로 말하면 무한단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이어가셨습니다. 석가나 예수 정도 되면 끝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변화는 끝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긍정으로의 변화가 무한히 이어지는 상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로서로 멈추지 않고 기쁨과 행복을 나누면서 사는 세상 참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나부터 내 가정부터 그리고 직장 나아가 국가, 의식은 우주로 이어지는 이 흐름들로 무한 확장되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서두에 말씀드렸던 ‘미션’과 관련한 메세지를 언급하시면서 핵심은 스스로의 ‘행복해탈’이라고 그것이 가장 영순위로 이루어져야 하는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이 순간 그 사실을 알면 된다는 것이죠. ‘아하’ 포인트였습니다. 긍정의 시작이였지요.  

“여러분들이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하려면 여러분들이 긍정성으로 불타는 화합이 되어야 해요. 그렇다면 긍정성이 다양한 측면이 있을터인데 가장 중심에 해당하는 긍정성이 무엇이냐 이거예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자신이 결국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무슨 말이예요. 내 주변 세상을 지옥쪽으로부터 천국쪽으로 나아가자하는거죠. 행복한 세상이다 이거죠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자 이거예요. 수시제가치국평천하 세상 천국을 말합니다.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면 누구부터 천국이여야되겠어요. 내가 천국이여야 한다고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 중에 핵심중에 핵심은 여기 지금 이 마음이 행복 해탈로 넘쳐버려야해요. 행복해탈로 넘쳐버리는 것 이것이 내가 변해야 할 0번, 특번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여기 여러분들의 마음이 행복해탈로 넘치고 계세요 안 넘치고 계세요? 어떠세요? “

그리고 처음에 언급하셨던것처럼 정작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 그저 지금 우리가 행복의 향수통에 흠뻑 빠져 있음을 알면 충분하다는 것을 한 참 강조 하셨지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더니 답답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시면서 이것만 오늘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지면 용타스님 강의장에 나타날 필요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세상에 전하고 싶은 건 다 전했으니까 말이죠. 

“나의 행복 해탈을 위해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면 어느 정도 필요할까요? 어느 정도도 필요하지 않다. 그냥 이렇게 있는 것, 어디 몸한 번 흔들어 봐요.  이러고 있는 것 만으로 이미 넘치는 행복 해탈 속에 있다 그거예요.  와 닿아요? 이대로 이미 넘치는 행복 해탈 속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실일은 뭐예요? 그냥 이대로 넘치는 행복은 춤을 춰버리면 되고 해탈가를 불러버리면 되는거예요.  내가 거짓말하는거 같아요 진짜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 이미 넘치는 행복속에 있으며 누구나 이미 넘치는 행복속에 있으면 누구나 이미 무한한 어느 유한이 아니예요. 무한한 해탈 속에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하실 일은 그것을 위해 108배를 하고 참선을 하라는게 아니예요. 물론 하면 보너스로 좋으니까 하라는거지 봉사활동한다고 할 필요도 없어 앉은 그 자리에서 그냥 알아버리면 돼. 으흠~ 딱 알아버리면 된다고 ‘알아버리면 된다’ 이 부분이 여러분들의 행복 해탈을 위한 열쇠 전부여요. 열쇠 그것만 하면 다른건 안해도 된다는 겁니까? 그건 그 다음 페이지 얘기야.”

그러면서 그 다음 페이지는 그 넘치는 행복 속에 있음을 알면서 회사도 나가고 동생이 이가 아프다고하면 같이 치과도 가주고 더불어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거라고 하셨습니다.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은 참으로 다른 이야기겠지요. 오늘 정말 귀한 황금 열쇠를 얻었습니다.

우리 몸을 3천조 마음을 3천조 그리고 경험을 3천조라고 해보아요. 스님께서 지난 시간에 말씀해주셨던 것을 복습해보는거예요. 아무리 낮추고 낮춘다고해도 우리들 모두는 9천조 부자임을 다시금 상기 시켜주셨지요. 

“9천조 부자라고 하는 것이 틀림없는데 얼른 속에서 아하로 안 오는 것은 그걸 또 음미하고 음미하고 음미하다면 그것이 확연해져 혼값 몸값 경험값 모두 3천조 그냥 이대로 있는 것이 9천조 부자다 빌게이츠가 60조 부자랍니다. 이건희씨는 얼마 부자인지 아세요? 빌게이츠보다는 한 참 적겠지 이것이 9천조 인데 빌게이츠 얼마? 60조 부자라니까. 그러면 수직의 선을 긋고 가장 위를 9천조 가장 아래를 0으로 했을때에 그래프를 찍어보면 0에서 가깝지. 점으로 찍어보면 아무것도 아니여. 그렇게 각자 세로의 막대 그래프를 가지고 종로를 걸어가보자고 해봐. 말하자면 빌게이츠나 나나 큰 차이가 없어져버려.”

수련생하나가 지독한 평등이네요하고 울더라 말씀하셨습니다. 절대 평등도 넘어선 지독한 평등앞에 오늘 우리 모두는 다시금 넘치는 행복을 떠올리면서 그 순간 속으로 젖어들어가 보았습니다.

“9천조 부자니까 목에 힘줄 필요가 없어. 그래서 내가 목에 힘줄 필요도 없고 빌게이츠 앞에 고개를 쳐 박고 비굴해질 필요도 없다 이거야. 내가 넘치는 행복속에 있는게 확실하잖아요. 이것만 있는게 아니라 보너스로 많이 많이 가지고 있잖아. 공기 가지고 있고 수도꼭지 틀면 물도 펑펑 쏟아지잖아 또 뭐 있어요? 보너스가 많죠. 보너스 없더라도 9천조 부자인데 보너스 합쳐놓으면 거의 1경에 접근할거예요.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여러분들이 안으로 완벽하게 행복해져 버리는 거예요. 안 행복한데 행복해지는게 아니라 이미 행복한 상태에 있으니까 그것만 인식하면 된다 그거예요. 해탈은 차차 논한다하고.

여러분들이 9천조 부자라고하는 이것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시고 실지로 명상을 해보세요. 그 의식으로 거기에 임재해 계시잖아요. 사유, 명상 부족이 있을뿐이예요. 조금만 해들어가면 이대로 온전하게 오케이가 되어버려요. 우선 9천조 부자는 유치원생도 그래요하고 박수치면 옳다고 하겠지. 9천조 부자론에 있어서 확실한 의식 토대를 갖춰라 이거야  9천조 부자인 나는 어때요 아무 거침없이 살 수가 있지 근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왜 그래요 나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심리 때문에 그런거예요. 부정적으로 인식을 하는 거예요. 인식의 전환이 변화입니다. 그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인식을 하게 되는 것. 여기에서 여기까지 변화예요. 이 단순한 변화가 여러분들의 가정을 천국으로 만드는거예요. 여러분들이 9천조 부자니까 여러분들의 가족도 9천조 부자로 여기게 됩니다. 예전처럼 가족들 괴롭힐 수가 없게 되는거예요. 이것이 복잡하게 멀게 있는게 아니라 한 생각의 변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거예요. “

‘아하’ 한 순간의 생각 전환! 이것이구나. 그 작은 변화가 온 우주를 변화시키는 것이구나라는 ‘아하’가 찾아왔습니다. 오늘따라 유독 ‘아하’의 포인트가 많이 찾아와서 반가웠지요. 그리고는 있음의 행복에서 없음의 해탈로 넘어가셨습니다.

“해탈은 뭐예요? 불해탈은 뭐예요? 걸리는 것이 불해탈이예요. 마음에 무엇인가 걸려 좋다 나쁘다 상대적인 관념의 전개를 걸림이라고 하는거예요. 그 걸리게 될 것 같으면 내 마음은 불편해지게 되어요 해탈로부터 멀어지게 되어요. 없는걸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걸림의 시작이예요.(펜을 보여주시며) 이거 있어요? 있죠. 근데 내가 보니 없어요. 이것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있다고 인식하면서 여기 걸려요. 없으면 공기기 때문에 안 걸리지 왜 없는걸 있다고 하느냐 이거예요 없는 걸 없다고 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조금의 노력은 필요하지 이것이 없다고 하는 인식이 와버리면 그 다음에 좋다라고 하는 추락이 스탑해버립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무엇으로 불해탈 구속을 산다구요 없는 걸 있다라고 있는 걸 좋다라고 또 해요 좋으면 싶다합니다 싶다하면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해탈을 살고있지 못하는 사람의 심리현상은 간단합니다. 있다 좋다 싶다 썅! 그래서 있다 좋다 싶다 썅은 썅을 전환시키는데 특별한 무엇을 가지고 올 필요가 없어 그냥 그 자리에서 정신만 차리고 보는 거예요. 정신만 차리고 보면 없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알아차림이 도통이고 숙명통, 누진통등 다양한 걸림 없음에 대해서 이어주셨습니다.

“넘치는 행복속에 이미 있다는 거야 근데 동시에 무한한 해탈속에 있다는거야. 걸리지 않는 마음을 해탈이라고 해 해탈을 할려면 어째야겠어요? 걸리는 것이 본래 없다는 것을 알면 되겠지”

이 부분이 어려울 것 같지만 왜 식은죽먹도록 쉬운걸 왜 내가 그토록 몰랐던가 역대 도인이 허허 그럽니다. 아무것 아닌걸 내가 해결할려고 아무것도 못했네 손으로 코 만지는 정도보다 더 간단한 것이 이런 사실을 수긍하는 거라 하셨지요. 그러니 이 무한한 해탈을 위해서 할일은 있다고 여겨졌던 것을 부정해버리면 된다는 것이지요.  

“부정해야 할 것 중에 부정해야 할 것은 우주 전부가 부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 1번이 나입니다. 우리는 어때요 ‘나’ 때문에 지옥이 와 버립니다. 가정속에 불화가 있다 하면 가족들 사이에 ‘나’’나’나 하는 심리가 다 들어 있어서 그래요. 나가 강하다고 하면 나하고 동생하고 있을 때 동생입에 누룽지 넣어줄 수 있을까요? 어렵겠죠 누룽지 하나로 전쟁까지 일어나는거예요.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씨예요. ‘나’가 이기적인 주체로 변해가게 됩니다. 내 것이 있게 되고 나와 내 것에 애착이 있게 되고 어느 레벨을 넘어서게 되고 그 후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요. “

이 대목에서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 뿐인 사람’이라고 했던 말 말이지요. 오늘은 정말 깊이 있는 복습의 시간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느냐! 우선 나는 몸뚱이부터 나지요. 몸뚱이만 부정되면 다 부정되어요. 50세라고 가정해 봅시다. 50년 전에 어디에 있었어요? 어머니 뱃속에 있었지 10달 중에 최초는 어디에 있었어요? 아버지 속에 정자로 어머니 속에 난자로 있었죠. 여러분들 몸은 정자와 난자예요. 1cc속에 2억마리의 정충이 들어 있어. 그것이 어머니의 난자와 만나 내가 되는거야. 정자는 나인가요? 정자여요? 정자는 자연이여요. 어머니 난소 속에 있던 난자는 나여 난자여? 난자이지. 정자는 정자이고 난자는 난자이지. 그리고 이 것이 환경과 연결해서 존재하는거지. 그래서 자연이 있을 뿐인 것이지. 내가 거기에 있는건 아니여. 난자라는 자연이 있을 뿐이여. 세트로 함께 있음으로해서 난자가 부분적으로 구실을 하는거지. 전체적으로 세트를 나라고 하면 했지,  이 부분만 나라고 할 수는 없는거지. 난자든 정자든 간에 그냥 자연이여요.”

그렇구나 자연의 일부! 있다고 할만한 것이 없음. 그 오랜 화두에 대해서 다시금 떠올려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현실인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예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설법하시고 아라한들이 깨달음에 이른 이야기도 이와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깨달음은 신비로운게 아니라 몰랐던걸 아니까 시원해져 버리는거야’ 라는 그 말씀이 가뭄의 해갈처럼 다가왔습니다. 자유감의 니르바나가 찾아온 것이지요. 

“나의 변화의 핵심은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예요. 없는 나를 있다고해서 괴로웠던 내가 없는 나를 없다고 해버리니 고통이 없고 자유로워져 버린거예요. 관점의 변화 전화 깨달음의 열쇠 변화의 열쇠예요 내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한 관점을 전환시켰더니 완전히 행복해져버렸어. 내 아들딸은 나를 보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져 그때는 아버지가 무서웠는데 지금은 아버지와 장난도 치고 싶어져. 가장 천국 간단해져 버려. 그렇게해서 내 중심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거야. “

자! 그러면 이제 내가 변해야 한다고 할 때 무엇을 해야하지 하는 생각이 이어지겠죠. 그런데 그 가려운 곳도 오늘 스님이 긁어주십니다.

“여러분들 마음 속에서 문득 속에서 걸리는게 생겼어 딱 생기면 어때 한 생각 바꾸면서 걸리는게 생기면서 정서가 꼬이지. 그냥 그 차원에서 풀어버려요. 근본적으로 나는 무한 행복 속에 있다하는 해법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도 풀 수가 있지. 오늘 내가 지하 주차장 2층에 차를 세우고 3층에 가서 찾은거야. 예전같으면 짜증이 났겠지만 바로 생각을 고쳐 먹었지. ‘움직일수록 장수한다’라는 한 생각 가지고 아침에 해탈 다 해버렸어.

그렇게 해서 순간순간 마음이  꼬여서 불편해지려고 할 때, 그 자리에서 다리미로 다리듯 열어버리라고 얼굴 미소 근육을 살짝 끌어올리면서 해보라고 살짝 끌어올리면서, 순간 순간 자신의 정서 관리를 하는거지. 미소 지으면서 하니 미소 이 자체가 변화 중의 변화예요. 내가 변해야 내 가정이 변한다 워메~내 중심에서부터 올라오는 넘치는 행복! 가벼운것부터 하라고 내가 변해야 가정이 변한다 속에서 기분이 꼬일 때에 생각을 이렇게 해봐

‘시체는 불쾌할 수도 없다’ 불쾌할 수 있는 자체가 축복인거예요. 그러면 꼬여있던 마음이 탁 풀려요.  그 때 미소를 지어봐~ 이 자체가변화예요. 그러면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그 때 그 때 내 마음을 미소진다면 그 자녀들은 뭔가 좋을거예요.  가정의 변화 직장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 특별한 무언가를 끌고와야 하는건 아니라고 한 생각 전환에서 오는거여 미소 짓는것만해도 큰 변화지.”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렇지 뭐 그렇게 대단한 변화를 꿈꾸었던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 한 번 더 보내고 말 한마디 더 상냥하게 하면 그곳이 천국인것을. 그러자 스님은 제 마음을 마치 읽기라도 하신듯 하나 더 덧붙여 주셨습니다. ‘고운말 쓰기’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상대방 기분을 고려해서 말을 하시라고. 내가 이렇게 말하고 내가 이렇게 변하면 내 가족이 어떻게 느낄까? 내 말을 조금 나이스하게 해보라고. 문 좀 닫아주소라는 말 한 마디라도 좀 더 상냥하게 할 수 있지않아. 예전에 명령조처럼 말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많이 미안허지. 내가 이렇게 표현하면 어떻게 느끼실까.  내 주변 사람들이 느낄 것을 고려해서 말하고 행동하라고.  내가 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우선 내 속에 꼬인 마음 푸는것부터 하라고 미소를 지으라고. 말 한디라도 기분을 고려해서 하라 이것이지. 이것이 뭐예요 이게 변화이지.

내가 말하는 변화를 유별나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가장 본질적인 변화가 너무도 아니라는 거죠. 조금만 사유하면 무한토록 행복이 들어있고 무한한 해탈이 들어있는거죠.  여러분들 가정을 천국으로 변화시키는거지 변화 레파토리의 만분의 일 밖에 안되어요. 이 순간의 나의 변화는 무엇일까? 그러면서 행동으로 저질러 보아요.”

그러시면서 오늘 처음으로 깨자봉들에 대한 감사를 직접 전해주셨네요. 마치 우리들의 행동들이 특히나 빛을 발하는 시점이였기 때문이였을까요?

“깨자봉 요원들 아주 고마워요. 여기 봉사해준다고 와서 노력해준 분들이거든요. 이 분들이 없는 상태의 행복마을을 생각해보면 그 차이가 크더라구요.  깨자봉 친구들~~~”하고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세미나실 밖에서 ‘네~~~’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듣고 있었구나. 대단히 고마워요~ “
‘감사합니다’라고  모두 함께 웃으면서 오늘의 강의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행복해탈을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과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누구나 이미 넘치는 행복 속에 있다는 지족의 의미, 누구나 이미 무한한 해탈 속에 있다는 ‘돈망’의 개념을 다시금 복습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더불어 어떻게하면 그 변화의 시작을 해볼 수 있는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의 시작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저 지금 바로 미소짓고 가까운 이들에게 상냥하게 말하기 섬세하게 살피면서 말하기입니다. 

맛난 샌드위치를 먹고 이어지는 ‘담아내기’의 시간도 참으로 좋았습니다. 정안님께서 열매님의 빈자리를 잘 채워주셨습니다. 늘 하던 시간인데도 늘 새롭게 여겨집니다. 함께 나누어 주신 하얀행복님, 정안님, 실상님, 나무님, 막내님, 꽃님 모두 감사합니다. 9천조의 의미를 다시금 함께 해주셨던 햇님도 감사드려요. 돈망 선방은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는 마법의 장 같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축하하는 자리였기도 했죠. 이런 화합의 장이 전 오늘 서로가 서로의 마음 거울을 닦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어떠한 아름다운 파동으로 이어질까 벌써 궁금해집니다. 

6월에도 많은 깨자봉님들이 함께해주셨습니다. 마음님, 신시님, 소율님, 알렉스님, 달녀님, 토토로님, 카멭님, 유월님, 햇님, 꽃님,무리노님, 현강님, 모리님 그리고 고사리같은 손으로 하나라도 돕고 싶어하던 귀여운 꼬맹이들(재원, 다솜, 보람) 모두 고마워요.

강좌 중에 하셨던 한 말씀으로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어느 구름에 비 내릴지 모른다고 들어 놓았던 그  한 마디에 천억짜리 복권당첨이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아하’하여 깨닫던지 다음 생에 깨닫던지 우리는 부지런히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지요. 어느 구름에 비 내릴지 모르는 것이니까요. 

오늘 모두 복권 한 장씩 품에 안고 돌아갑니다. 용타스님 소중하고도 귀한 말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무한 행복 속에서 …!

글. 사샤 (cieljs@gmail.com/ http://www.facebook.com/lotusnciel)
사진. 러블리 신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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