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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07:44
제목
3. 가없는 보시의 마음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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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없는 보시의 마음바다 : 비사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베풀어보라.
아무 것도 주지 않는 그대에게
아무 말, 할 말 없구나.
「본생경·535 주석서」
 

참으로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분들을 보면 그분의 인품의 향기에 존경심이 우러나지 않을 수 없다. 한평생 애써 모은 재산을 대학의 연구기금으로 기증한 할머니, 고궁만치나 넓고 아름다운 정원의 고급음식점을 미련없이 전법도량으로 희사한 보살님, 화가로서 일생 동안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마련해둔 임야를 절터로 쓰도록 기꺼이 헌납한 거사님, 이런 분들의 보시행은 그만큼의 무아(無我)의 실천이 아닐까 싶어져서 생각만 해도 더불어 기뻐진다. 국가적인 경제난으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에도 여기저기서 크고 작게 피어오른 보시의 마음들이 있었기에 우리네 세상은 밤하늘의 별빛처럼 아름답기만 했다. 세상에서 얻은 부를 세상으로 돌릴 줄 아는 그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이지만 몸소 행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부처님 당시에도 구경해탈을 위해 무한보시를 실천한 여성 재가불자가 있었는데 그분의 이름은 비사카였다. 비사카는 빔비사라 왕이 통치하는 마가다국 앙가 지방에 살고 있는 부호 집안의 딸이었다. 비사카가 7살이었을 때 부처님과 제자들이 비사카의 마을에 도착하시자 그녀의 가족들은 부처님의 법을 듣고서 예류과에 들었다고 한다. 예류과가 열반을 향한 흐름에 들어서 일곱 생 이내에 구경해탈을 이룰 수 있는 경지임을 볼 때, 부처님의 제도능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들 가족의 수행근기도 예사롭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날 이웃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은 자국민에게 공덕의 모범을 보이고자 하니 비사카 가족이 자국에 와서 살게 해달라고 청했다. 이에 빔비사라 왕은 비사카의 부모와 가족이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왓티 교외에 이주하여 살도록 허락했다. 비사카는 이곳에서도 삼보를 공경하는 성스러운 가정 분위기에서 성장해갔다. 당시 사왓티에는 미가라라는 부호가 있었는데 그는 혼기가 찬, 푼나왓다나라는 아들을 두고 있었다. 푼나왓다나는 아버지의 결혼 재촉에 못 이겨 머리카락, 몸매, 치아, 피부, 젊음의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갖춘 여자와만 결혼하겠다고 고집하였다. 미가라는 브라만 사제들에게 부탁하여 온 나라를 뒤져서라도 그런 며느리감을 찾도록 하였다. 브라만들은 도저히 그런 미인을 찾을 수 없어 포기하고 돌아오던 중, 방년 16세의 비사카를 만나고서 눈이 번쩍 뜨여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가 청혼 소식을 전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이 청혼을 받아들이자 두 남녀는 파세나디 국왕까지 참석하는 성대한 결혼식을 치르고 부부가 되었다.

그런데 시아버지인 미가라는 알몸으로 생활하는 나형외도(裸形外道)의 추종자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마을 가까이에 머물고 계신데도 한 번도 초대하거나 공양을 올리지 않았다. 한번은 나형외도 수행자들을 집안에 초대해놓고 며느리 비사카에게 아라한들이 오셨으니 절을 올리라고 하였다. 비사카는 부처님 교단의 스님들이 온 줄 알고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갔으나 그들이 나형외도임을 알고서 기겁을 한 채 절도 하지 않고 뛰쳐나와 버렸다. 나형외도들은 미가라에게 사문 고타마를 좇는 그녀를 당장 내쫓으라고 말했지만 미가라는 간신히 참아넘긴다.

어느 날 미가라가 식사중인데 부처님 승단의 수행자들이 집앞에 걸식을 하러 왔다. 시아버지에게 부채질을 해주던 비사카는 시아버지가 수행자들을 못본 척하고 식사를 계속하자 "스님들, 다른 집으로 가보시지요. 저희 아버님은 썩은 음식을 잡숫고 계십니다."라고 말했다. 시아버지는 화가 나서 며느리를 당장 쫓아내려 했지만, 큰 잘못은 아니니 참으라는 측근의 말에 못 이기는 척 화를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비사카는 친정으로 돌아가겠다고 꾀를 내어 시아버지의 사과를 받아냈다. 결국 부처님과 스님들을 집에 초대할 것을 허락받고 눌러앉기로 한 것이다. 시아버지는 마지못해 승낙은 했으나 나형외도의 조언에 따라 부처님의 설법을 커튼 뒤에서만 살짝 엿들었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을 듣자마자 깊이 감동하게 되었고, 존재의 본성에 대한 궁극적 진리를 깨달아 예류과에 들었다. 미가라는 감사에 겨워 이제부터 며느리를 어머니처럼 공경하겠노라고 말하며 "미가라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비사카를 "미가라마타[鹿子母]"라 불렀다. 그리고는 세존께 엎드려 절한 뒤 삼보에 귀의하기로 맹세했다. 비사카는 다음 날에도 부처님을 초대하여 법을 들었고,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예류과를 얻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이들 가족 모두는 부처님 승단의 비구와 비구니를 후원하는 열렬한 시주자가 되었다.

율장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어느 날 비사카는 법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값진 결혼 보석을 법회장에 떨어뜨린 채 잃어버린 척하고 나왔는데 결국 아난다 존자가 이를 보관하게 된다. 자신이 주인임이 밝혀지자 비사카는 다시는 그런 보석을 몸에 지니지 않으려 마음먹고 그것을 판 돈이 승단에 돌아가도록 하고 싶어서 그랬노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왓티에는 이런 비싼 보석을 살 만한 부자가 없었기에 그녀 자신이 다른 재산을 많이 헌납하고서 보석을 다시 사들여야만 했고, 이를 계기로 사왓티 근교에 녹자모강당[東園精舍]이라는 승원을 건립하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아나타핀디카의 기원정사에 오래 머무셨듯이 이곳에서도 말년의 20년 동안 자주 머무셨기에 많은 경의 서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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