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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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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정(鄭) 장로님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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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鄭) 장로님의 믿음

- 믿음의 공덕과 아름다움-

 

정(鄭) 장로님을 떠올리면 옷깃이 여미어지고 마음가짐이 단아해지며 합장이 올려진다. 정(鄭) 장로님의 신행생활에 대한 감동과 존경심에서다.

 

정 장로님은 모태신앙인이자 개신교 장로로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하시다가 정년을 마치신 지 4년이 되셨고, 지금은 당신이 다니시던 교회의 일들을 적극적으로 보살피시면서  일반 신도들에게 돈독한 신앙생활의 본이 되어주시는 분이다. 그 분은 지금부터 38년 전 평교사 시절에 갑장이신 내 스승님과 한 학교에서 2년 정도 같이 봉직하시며 절친한 친구가 되셨고, 그런 연유로 나와도 인연이 되어 두 어른이 가끔 만나시는 자리에 함께하면서 경륜이 깊으신 어른들의 향기를 맡으며 많은 감화를 받곤 하였다.

 

얼마 전 우연히 두 어른과 다른 젊은 한 분과 함께 광주 비엔날레를 관람하면서 또 한번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평생의 일이셨던 교육자로서의 일을 놓으시고 그 많은 시간과 세월을 무엇으로 보내고 계시며 다소 활기가 떨어지시지는 않으셨을까 내심 마음 씀이 있었는데, 여전히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며 아직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으신 양 즐겁게 바쁘신 모습을 뵙고 마음이 놓이며 감사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저분의 삶의 에너지원은 무엇일까?’, ‘ 저분 속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무엇이 저분으로 하여금 한결같이 밝고, 즐겁고, 활동적이게 할까?’ 하고 말이다. 때마침 내 스승님께서 내 속을 들여다보시기라도 하신 듯 물으셨다. “정 장로! 항상 그렇게 즐겁고 신이 나시오? 그리고 정 장로는 참으로 복(福)이 많으신 분 같아요. 그런 편이시지요?” 하셨다.

 

이때 정 장로님의 시원시원한 대답은 우리 모두의 입을 꾹 다물게 하였고 급기야 숙연한 명상 분위기 속에 잠기게 했다. “최 선생, 내가 안 행복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걱정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데? 매일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기도 올릴 때마다 아예 이렇게 고해바치오. <아버지, 나는 없습니다. 내 하루의 삶을 다 당신께 바칠 터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내가 알아서 살려고 한다면 이런저런 실수도 있고 고약한 결과도 있을 것인즉, 당신 인도하시는 대로 내가 살 것이니 그저 인도하소서!> 딱 그렇게 마음먹고 하루를 시작한다오. 그러면 나의 모든 생활 즉 일거수일투족이 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고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 아무 걱정이 없어요!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하여서도 <당신>이 알아서 다 처리하신다고 믿고 있으니 내가 성화를 댈 필요가 무엇이 있겠어요? 안 그려요? 확실히 믿어지는데요, 뭐! 이보다 더 큰 복(福)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말이오! 내가 청년 시절 신앙이 덜 영글어 딴 짓을 좀 하고 새벽기도도 안 나가고 한 적에, 내 어머니께서 조용조용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거든요? <그렇게 딱 믿어지질 않으냐? 믿어버리면 참 좋은데 말이다! 언젠가는 그래질 날이 올 것이다.> 하시면서 평생 하루도 안 거르시고 새벽기도를 나가시면서도 나에게 신앙을 강요하시지 않고 지켜봐 주시더군요. 그러더니 내가 나이 먹어가면서 더욱 그 어머니 마음을 알겠어요.”

 

아직 티 없는 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맑고 힘 있는 목소리로 들려주시는 정 장로님의 그 믿음이 어찌 그리도 확고하고 탄탄한지, 한 줄기 빛살도 새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였다. 듣는 이로 하여금 온몸이 경건한 두려움으로 굳어지게 하였고, 숨조차 죽이게 하는 성스러운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는 눈물이 울컥 쏟아졌고, 나도 모르게 합장을 올렸다. 정 장로님의 믿음에 감염이라도 된 듯, 내 마음도 탄탄한 기쁨으로 가득차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것을 은혜라고 하던가? 그 이전에도 더러 정 장로님의 믿음에 대한 말씀을 들어오긴 했지만 그날의 느낌은 더욱 각별했다. 아마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로 기억될 듯싶었다. 같이 있었던 다른 분들의 소감도 대동소이했다.

 

나는 돌아와서도 간간히 자신에게 묻곤 한다. 정 장로님의 믿음처럼, 한 줄기 빛살도 새들어갈 틈 없이 확고하고 탄탄한 저 믿음처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숨을 죽이게 할 만큼  경건한 두려움으로 합장을 올리게 할 만한 나의 믿음, 나의 지향점, 나의 가치관이 무엇인가 자문하며 짚어보곤 한다. 그래서 그 믿음이나 지향점이나 가치관을 살아내기 위해 죽음을 불사(不辭)하고 혼신을 다 바칠 만큼의 열정을 자아내게 하는 그런 양심(良心)을 그려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정없이 부족한 자신의 양심을 부끄러워하며, 그 부끄러움을 감사해 하며 오늘 하루도 다져간다. 무아(無我)라 공(空)이라 하였는데, 자아(自我)를 벗어던지고 주검처럼 고요히 나없음을 살고 있는가? 본래청정(本來淸淨)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하였는데, 가히 허공(虛空)처럼 일없이 살고 있는가?

 

동사섭 문화의 마지막 지향점은 돈망(頓忘 : 본래청정, 본래무일물)의 삶이다. 돈망을 바탕으로 하여 이런저런 가치론적 삶을 풍성하고, 다정하고, 곱게 꾸려가자는 것이다. 갖갖 풍성한 삶을 가꾸어가더라도 끝내는 돈망으로 쉬어가는 삶을 살자는 것이 동사섭인의 목표이다. 스승님을 모시고 동사섭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발전시키고, 살림을 꾸려오며 보낸 세월이 어언 4반세기이다. 남은 생(生) 또한 오롯이, 지금껏 바쳐온 세월에 준하여 그 누구보다도 인격으로 본을 보이며 책임감 있게 동사섭인으로서의 삶을 수놓아 가야할 사람이다. 저 정(鄭) 장로님처럼 맑고 탄탄한 믿음과 정진력을 가져야할 터!

 

어느 듯 또 한 해가 기울어 간다. “나이값, 밥값을 더 해야지?” 하면서 저무는 서녘 노을을 바라본다. 비장하면서도 한가로운 마음이 참 좋다.

 

 

 

2006년 12월의 하루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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