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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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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헌신(獻身) -대원(大願)의 궁극(窮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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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獻身)

- 대원(大願)의 궁극(窮極) -

 

떠올리면 은근한 깨우침과 감동으로 가슴을 적셔주는 말들이 더러 있다. 헌신(獻身)이라는 말도 그 하나이다. 몸과 마음을 바쳐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삶을, 우리들의 관계를, 나아가서 우리의 사회를 훈훈하고 평화롭게 해주는 덕성이다. 헌신(獻身)이라............음미해보면 해볼수록 마음이 낮아지고 다소곳해지며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말이다. 다소 성글거나 서툴렀던 마음을 다잡아주며 커다랗게 마음을 넓혀주는 말이다. 다 주고도, 다 놓고도, 다 바치고서도 가장 넉넉한 마음이게 하는 말인 듯싶다.

누군가를 헌신적(獻身的)으로 사랑해 본다는 일, 누군가를 헌신적으로 섬겨보는 일, 어딘가에 헌신적으로 몰두해 본다는 것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그 자체로서 지고한 행복이요, 아름다움이요, 품격이기에 말이다. 헌신적이게 되려면 자신을 내세워서는 아니 될 것이요, 헌신적이게 되려면 온전한 사랑이 아니면 안 될 것이요, 또한 헌신적이게 되려면 확실한 가치로 받아들일 때일 것이다. 제대로의 헌신 속에는 무소주심(無所住心)이 전제될 것이다. 무아 실현(無我 實現), 무위 구현(無爲 具現)의 한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헌신은 희생(犧牲)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희생 속에는 자칫 생색(生色)이 묻어있을 수도 있고, 보상심리가 배어있을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나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도 헌신의 삶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우리를 깨우치게 하며, 아울러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 그 가운데 우리들의 어머니, 어머니들의 삶은 이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 사랑의 대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을철에 접어들면서부터 부쩍 벌 쏘임을 당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사고가 많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하여 보도되고 있다. 지난 9월 1일 자 방송에서 접한 뉴스로서 60세 조모께서 손자손녀를 데리고 해거름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벌 떼가 유모차에 있는 손자(2세)와 걷고 있는 손녀(5세)에게 달려들어 마구 쏘기 시작했단다. 말벌은 떼를 지어 몰려들며 표적물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하나의 특성으로 알려져 있다. 할머니께서는 잽싸게 웃옷을 벗어서 손자와 손녀를 감싸고 그 위에 당신의 몸으로 아이들을 덮으며 필사적으로 벌떼들을 방어하셨다 한다. 순식간에 얼굴과 머리, 그리고 몸통 여기저기 백여 군데를 쏘였고, “애들만이라도 제발 살려 달라!”며 벌들에게 호소하는 외침을 듣고 인근 주민들의 신고로 119구급대가 출동해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지만 할머니는 이내 숨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감사와 존경으로 감동되며 가슴이 뭉클,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소식이다. 마침 산소에 벌초하러 갔다가 벌떼들을 조심하자는 다짐들을 서로 나누며 함께했던 일행 중 한 사람에게 전해 듣고는 가만히 소리 죽여 울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부모(父母)’가 아니고서는 그 뉘가 그러한 필사적(必死的)인 헌신(獻身)의 정성을 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다시금 모든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 누대(累代)의 조상님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합장이 올려졌다. 그리고 헌신(獻身)의 덕성에 대하여 새삼 깊게 생각해 보게 했다.

 

헌신적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효성(孝誠) 지극한 자녀들의 일화에도 많다. 우선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고전의 한 토막인 심청전에서도 볼 수 있다. 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한 일념으로 공양미 삼백 석을 덥석 시주첩에다 올려놓고서는 그 대책으로 임당수의 재물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설화이다. 심청전은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운 우화 같이 들려질 수도 있는데,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거듭 감동하고 또 감동하는 내용이다. 그 이유야 많이 있겠지만 가장 유력한 이유 하나로서는 심청의 효성을 통하여 드러난, 사람 속에 내재되어 있는 헌신의 덕성을 최대한 찬양하며 따라보고자 하는 우리들의 염원(念願)에서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아무튼 심청의 헌신적 효성은 어느 시대의 사람이건 따라해 보고 싶은 고결한 덕성이라 할 수 있으리라.

 

동사섭 문화에서의 이상적 목표는 대원(大願)이다. 이 세상 모두의 지극한 행복을 염원함이다. 대원정신(大願精神)은 동사섭 문화에서 권장하고 있는 기초 덕성이라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세상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며, 각자 나름의 정성으로 일상의 모든 것들이 대원행(大願行)이 되도록 노력해 갈 것이며, 나아가서는 세상 행복을 위해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정진해 가자는 것이다. 이러히 대원을 삶의 모토로 삼는다. 대원의 궁극적(窮極的) 실천은 아마도 헌신으로 나타날 것이다. 손자손녀들을 살리기 위해 맨몸으로 벌떼의 공격을 감당해 내신 조모님의 헌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신을 재물로 바치는 심청의 헌신, 이 모두 가슴을 아리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한 가슴을 훈훈하게도 해 주는 아름다운 대원행의 본보기이다. 우리에게 맑은 소망을 안내하는 스승으로서의 가르침들이다.

 

예부터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예찬되어 왔다. 이 좋은 가을에 나는 무엇으로 살을 찌울까 빙그레 고민한다. 좀 더 마음을 비우고, 순간순간 임하는 어느 곳에든 오롯이  바칠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고 다시 결심해본다.

 

 

2007년 9월 말일, 가을 문턱에서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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