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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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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시골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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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장터

- 장터 인심에서 배우며 -

 

이곳 장수는 고지대(高地帶)이다. 장수 읍내가 해발 약 450m 쯤 된다. 공장이나 그 밖의 관광개발 등으로 올 수 있는 자연훼손이 거의 없고, 아직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와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장수의 하늘은 사철 동안 내내 눈비 올 때 빼 놓고는 늘 투명하게 푸르다. 또한 그지없이 맑고 낮게 내려와 있다. 마치 하늘 속에서 살고 있는 듯 느끼게 한다. 채전을 갈기 위해 땅을 뒤엎을 때면 건강한 지렁이와 달팽이들을 연신 만날 수 있고, 여름밤이면 반딧불이 뜰 안 여기저기서 많이도 날아다닌다.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살찌게 한다. 나는 장수에서 사는 것이 은근히 자랑스럽다. 오염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은 것은 자연 뿐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인심 또한 그렇다. 장수 주민들의 순박하고 다정한 인심 속에서 근 20년을 산 나는 이곳이 마치 고향 같은 평온함과 친근감을 느낀다. 장터에 가보면 특히 더 그러하다. 장수의 시골 장날 풍경을 떠올리면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마음 살도 화-ㄹ짝 펴진다.

 

장수에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5일장이 선다. 닷새 만에 한번 씩 큰 장이 열리며 산골 구석구석의 사람들이 읍내에 나오는 계기가 되고, 이웃 읍•면에서도 장사하시는 분들과 장보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 장터가 분빈다. 평소 한산하게 텅 빈 장터가 사람들과 사람들의 목소리들, 그리고 사고파는 물건들로 꽉 차면서 붐비는 자체가 마음을 설레게 하고 그득하게 하는 듯, 장날에는 읍내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우리 동네 선창리 사람들도 읍내 사람들도 공연히 장터를 기웃거린다.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서 정감이 일고, 가끔은 향수에 젖게 하는 모습들이다. 그래서 나도 장날이면 더러 손님들과 혹은 함께 사는 대중들과 장터엘 나간다. 딱히 물건을 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도, 시골 장터 풍경에서 젖어오는 그 서정이 좋고 노점 상인들과 아기자기한 흥정을 하며 갈아주는 그 정감이 좋아서 덜 필요한 것들도 조금씩 사기도 하는 재미가 있어서이다. 장터 사람들과의 사교(社交)는 자신의 마음의 유연성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중대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 또한 늘 즐거운 공부거리이다.

 

장날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특히 인상에 남는 한 분이 있다. 그 분은 읍에서 한참 떨어진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분으로서 장날에만 내려오셔서 국수 장사를 하는 60대 초반의 아주머니이시다. 시장터 구석에 허름하게 위치하고 있는 이 분의 국수 가게에는 대체로 사람들이 거의 가득 차 있다. 거들어 주시는 다른 아주머니가 한 분 내지 어떤 때에는 두 분 정도 계심에도 늘 손발이 바쁘시다. 국수 한 그릇의 값은 2천 원이다. 장날 하루 종일 100그릇 정도를 낸다 하더라도 20만 원이요, 국수와 연료와 반찬 등의 비용과 인건비 및 자릿세를 제하고 나면 과연 얼마나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가격이다. 뿐만이 아니다. 국수 한 그릇을 주문하면 반찬도 4~5찬 정도로 푸짐한데다가, 원하는 사람에게는 공기밥 한 그릇과 씨레기국 한 대접을 덤으로 주신다. 아직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다 먹고 나면 믹스 커피를 타다 주신다. 후식(後食)인 셈이다. 내가 가면 늘 사이다를 사다가 주신다. 특별대접인 듯하다. 전식(前食)도 있다. 국수 삶는 동안 기다리며 먹으라고 강냉이 튀밥이나 알밤 혹은 잘잘하고 이쁜 고구마 감자 삶은 것 등을 내어 놓으신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2천 원어치 식사 치고는 송구스럽도록 풍성하다. 물론  따숩고 융숭함에 못지않게 맛도 그만이다. 국수 양념장이나 나물무침, 그리고 김치 등이 감칠맛 나게 맛있고 구수한 씨레기국은 사철 인기가 높다. 지난 여름 어느 장날, 배낭을 메고 등산복 차림을 하고 계시기는 했지만 도시 티가 물씬 배어나오는 한 신사 양반이 시장하셨던 둥 국수 한 그릇과 씨레기국에 밥을 말아 국밥 한 양푼까지 드시고 값을 지불할 때에 2천 원이라는 것을 듣고 얼마나 놀라고 감동하시는지 지금도 그 표정 그 미소가 눈에 선하다. 한 동안 장날 오시는 손님들께는 점심대접으로 장터국수를 맛보여 드리곤 하였다. 어느 때부터인가 국수 먹으러 갈 때면 과일이나 호떡 등을 사서 들고 가곤 해졌다. 풍성한 대접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을 받으실 때면 또 얼마나 정성스럽고 인정스럽게 고마워하시는지, 참으로 기분 좋게 하며 정들게 하는 교류였다. 그 국수집 아주머니의 따뜻하고 푸짐한 눈길과 손길, 그리고 그 국수집의 훈훈한 풍경을 떠올리면 참으로 좋다. 마치 고향집 잔칫날 같은 분위기이다. 냉정함이나 인색한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덩달아 넉넉해지는 듯, 더욱 베풀고 싶게 한다. 단돈 2천 원으로 이렇듯 넘치도록 푸짐한 정감을 먹을 수 있다니, 도대체 수지타산은 있는 것인지 단돈 2천 원을 받고도 이렇게 맘껏 베풀 수 있는 넉넉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새삼 놀랍고 옷깃을 여미며 숙연하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 이런 것 아니겠나 하고.

 

동사섭 문화에서 권장하는 5요 덕성(대원, 수심, 화합, 작선, 정체)에 비추어 본다. 이 아주머니는 그날 당신 가게에 오는 모든 분들의 행복을 위하여 온전히 종사하고 있는 듯하다. 오는 사람들을 담뿍 반기는 얼굴, 고향집처럼 느껴지는 따뜻한 대접, 그리고 욕심 없는 듯한 맑은 거래, 부지런하고 알뜰하게 일하는 모습, 거기에  대원(大願), 수심(修心), 화합(和合), 작선(作善)이 다 들어 있다. 확실한 주인의 정체(正體)는 말할 것도 없다.

 

오늘은 장수 장날이다. 대중들과 함께 읍내에 가서 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그 아주머니의 따사한 훈김을 담아와야겠다. 그 아주머니의 아름다운 보살행(菩薩行)의 모습을 닮아갈 것을 다지며 올 겨울이 한결 따스하리라 기대해 본다.

 

2007년 11월의 말일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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