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10:28
제목
76. 자식의 의미
작성자
관리자
파일

자식의 의미

– 친구 아들의 결혼식 날 –

 

 

동사섭 수련 중 어느 강의 시간에 수강자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은혜로운 것이 무엇이냐고. 많은 대답들 가운데 어떤 분의 대답, <자식>이란다. 이어서 또 질문한다. “이 세상에서의 최고 원수는?” 하고. 어느 한 여인이 탄식하듯 답하시길, “자식이오.”

이렇듯 최고 원수로도 최고 은혜로도 여겨질 수 있는 자식, 이 <자식의 의미>에 대해 새로이 깊게 마음이 머물게 하는 날이 있었다.

 

저 지난 주말에 고향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친구는 열렬한 연애 3년 끝에 결혼을 하였고, 결혼한 지 3년 만에 이혼을 하여 꽃다운 20대부터 그 아들 하나를 바라보며 딴 마음 한번 허용 안 하고 4반세기의 세월을 훌쩍 넘겨 오늘날에 이르렀다. 지내놓고 보니 ‘훌쩍’이라고도 표현을 하지 그 숱한 세월의 고비마다 얼마나 눈물겹고 애 터지는 힘겨움과 외로움을 감인(勘忍)해 왔는지, 옆에서 지켜봐도 참으로 길고도 먼 여정이었다.

친구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아니 어쩜 유일한 고충은 경제난이었다. 자취생들처럼 단칸 월세방에서 시작한 철부지 결혼생활, 몸 붙일 방 한 칸의 위자료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임에도 단호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혼, 바람벽이 이혼사유인 만큼 교육을 생각하여 자식까지 안고 홀로 되어 다시 시작한 친구와 친구아들의 인생살이, 밑천이 너무도 없는 시작인지인지라 도대체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한다.

스물여덟 살 새댁이 겨우 걸음마를 내딛고 말을 익혀가며 온통 호기심으로 가득 차 정신없이 나대는 어린 자식을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은, 생계를 위해 일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한다. 애가 잠자는 틈을 타서 밤에는 남의 세탁물을 맡아서 손빨래로 해 주기도 하고, 낮에는 애를 데리고 시장 난전에서 채소를 떼다가 팔아 그날그날 겨우 연명을 하며 독한 마음으로 살아냈다고 한다. 20대 새댁으로서 감당하기엔 가혹한 현실이었지만 그 모든 일들을 능히 헤쳐가게 한 것은 바로 그녀에게  <자식>이 있어서였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일들을 거침없이 치러오다가, 세련된 감각을 갖고 있어서 화장술과 옷맵시가 남다른 친구는 나중에 의류 계통의 일을 했다. 백화점 구석에 작은 점포를 운영하다가 IMF 이후에는 사정이 어려워져 거리에서 난전 옷 장사를 하기도 했다. 추위와 더위와 무거운 옷짐에 시달리며 비록 몸에는 골병이 들었지만, 이제는 아들이 대학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멀리 인도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회사에서 내어주는 아파트와 승용차도 있고, 도우미까지 지원해주는 덕분에 친구도 난전 옷 가게를 접고 지금은 인도에서 아들과 행복한 나날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부처님, 제 업장이 얼마나 두텁습니까? 얼 만큼의 고통을 치러야 제 고생은 끝이 납니까? 그래도 제게 자식 하나 주셨음에 감사하며, 또 견뎌보겠습니다”하고 울부짖으며 부처님 앞에서, 내 앞에서 목 놓아 운 적이 그 몇 회였던가! 그 친구의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평소 내가 존경하고 주례사 말씀이 훌륭하다고 평이 나 계시는 한 어른 분께 주례를 특별히 부탁드리고 개인 사정으로 결혼식에 참석은 못 하였지만, “신부보다 더 이쁘게 차려 입고, 신부보다 더 환하게 웃으세요.”를 몇 차례고 당부한 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을 친구 대신 뜨겁게 오열하며 찬탄과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올렸다. 남몰래 쏟아낸 내 눈물은, 인간승리의 모습을 야무지고도 숭고하게 보여준 친구의 삶에 대한 겸손한 예찬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결혼식장에 다녀온 주변인들의 말을 전해 듣고 나는 다시 한번 큰 울음을 터뜨렸다. 인간에 대해, 아니 자식의 의미에 대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무한한 공부꺼리가 있을 것이라는 자각과, 내 친구 아들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감사함에서이다.

친구의 옛 남편은 지금 재혼을 하였지만 슬하에 친자식이 없다 한다. 그리고 친구와는 이혼을 하여 남이 되었다 한들 그 아들에게는 여전히 아버지임에 틀림없을 것이지만, 무슨 사정에서인지 자식에 대하여 무심함으로 일관해 오면서 이 모자의 가슴속에 원망과 분노와 적대감을 쌓게 해 왔음을 내가 안다. 그런데 그 아버지를 이 모자는 예식장에 ‘부(父)로서 초청하였고, 친구는 그 남자분과 나란히 앉아 그 이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고 분위기 있게 사교성을 발휘하며 누가 봐도 보기 좋은 가족의 모습을 연출하였다 한다. 나중에 친구와 나누어 본 즉 그날만큼은 자식을 위해, 자식의 자존심과 축복을 위해, 삼십 년 세월의 한(恨)을 가만히 내려놓고 그 남자 분을 자식의 애비로만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작심하니 그 사람의 괘씸했던 여러 소행과 인생 역정 전반에 연민이 일고, 당신 자식을 선물해 주심만으로도 감사하며, 죽지 않고 살아 있어 그날 그 자리를 빛내 줌에도 감사하더란다. 물론 친구는 그 사이 종교적 수행을 통하여 짙은 악감정을 많이도 순화시켜 왔다고는 하나, 이 만큼의 역할을 기대하기로는 그 세월의 아픔이 너무도 컸음을 또한 내가 잘 아는 바였다.

 

<자식>이 무엇이기에 하늘은, 자식을 통하여 이 여인에게 이토록 심오한 체험을 하게 하시는지! <자식>이 있어 오늘의 이 관대한 화해의 마당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자식님 덕분에………………………

새삼 자식의 의미를 곱씹고 곱씹어보며 명상을 하였고 그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나아가 존재계의 섭리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더욱 다지게 되었다. 다시 한번 친구, 친구 아들, 그 아들의 아버지의 삶에 대해 존경의 합장을 올리며 모두 더욱 행복하시오라 기도하였다. 문득 내가 자랄 때에 어머니로부터 더러더러 들어왔던 한 말씀이 떠오른다. 지나칠 만큼 자식들에게 헌신하며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화가 날 때가 많았다. 어머니의 지나친 배려에 대한 안쓰러움과 감사함의 서투른 표현으로 역정을 낼 때면, “네들도 머잖아 남의 부모 되어봐라, 그때 이 애미 속 알거다.” 이셨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무궁하게 내포하는 무서운 말이라는 것을 세월이 한참 흐른 다음에야 조금 알게 되었다.

 

어제는 모 방송사에서, 해외 입양되어간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국에 와 그 부모들을 찾는 과정을 방영했다. 눈물겨웠다. 각자 그 어떤 속사정으로 자식을 멀리 떼어놔야 할 부모가 되어버렸지만, 해가 갈수록 그 부모들의 가슴속에서 그 자식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의미의 존재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입양되어 가신 분들 대부분이 그것을 믿고 그 부모들 나름의 사정을 관대히 이해하려 하였으며, 존재해 주심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들 있었다. 그들을 살아내게 한 삶의 원동력은 물론 양부모님들의 진심어린 사랑이었고, 그러나 그 핵심에는 한결같이 <그들의 뿌리인 생부생모에 대한 그리움>이 뿌리 깊게 박혀 자라고 있었다 한다. 자식의 의미만큼이나 부모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며 뇌리를 친다.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감사하고,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감사하며,

또 다른 생에 남의 자식으로 잉태된다면 세세생생 뱃속에서부터 효자자식 되어드릴 것을 서원해본다. 그 부모에게 <어떤 의미>일 것인가를 미리 헤아려보며…………….

 

묵은 한 해의 마감과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정리정돈해 보는 연말이다. 세계경제가 어려워 다들 움츠려들기는 하겠지만, 모두모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따사롭고 복된  마음으로 다정한 가정들 만들어 가시라고 기도 올린다. 내 친구처럼, 그 친구 아들의 오늘 같은 날도 오겠거니 기약하며 말이다.

 

 

2008년 12월 21일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