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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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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무엇으로 재산 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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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재산 삼을까!

무엇으로 재산을 삼을까!

 

십여 년 전의 일이다. IMF혹풍으로 직장마다 명퇴 바람이 술렁이고 있던 즈음이다. 가까이 알고 지내던 분이 지방 은행 지점장으로 계시다가 후배들에게 기회를 내줘야 한다고 좀 이른 감이 있는 연세임에도 자진 명예퇴직을 하시고는 귀농하여 과수원을 가꾸는 농군이 되셨다. 부부는 불교 신도로서 신심이 매우 돈독하시고 타의 모범이 될만한 교양과 품위를 갖추고 계셨으며, 얼굴에는 늘 기품 있는 미소와 여유로움이 흐르는 분들이셨다. 그런데 귀농을 하시고 2년도 채 못 되어 부인께서는 신경정신과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남편 분도 시골 생활을 접고 다시 도회지로 나가셨다. 그 이후 한 세월 동안 지인들은 그 분들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본인들께 들은 바이다. 아내는 시골생활 부적응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남편 역시 변화된 주변의 대접과 조촐해진 살림살이, 충분한 예비상식 없이 덤빈 농사일 등 시골살이가 힘들었다고 한다. 사회적 지위가 받쳐준 품위, 경제적 안정이 가져다 준 여유, 적당한 사교생활이 지켜준 건강, 그리고 스스로 잘 해 낼 수 있는 일감이 주는 기쁨 등이 재산으로 있다가 크게 변화된 환경을 적응하는 일이 그렇게 만만치가 않더라 하시면서, 전혀 예상치도 못 했던 심리 과정들을 치루며 과거에 누리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 태어나는 데 드는 수업료가 톡톡했다고 한다. 지금은 청빈한 선비의 모습으로, 또 그 곁을 함께하시는 고운 아내의 모습으로 돌아와 한가롭고 아름답게 노년을 만들어 가고 계신다. 요즘도 가끔씩 만나는데, 뵙기에 참 좋다. 그들이 아프게 고민하고 깊게 깨달은 것은 ‘정녕 무엇을 재산으로 삼을까’였다고 한다. 재물, 돈, 명예, 직위, 능력 등이 그들의 재산 전부였었고, 또 남의 눈이 자신들의 삶의 심판관이었다는 말씀을 하시며 조용히 웃으셨다.

 

집안의 아주머니 되시는 분께서 20여 년 동안 보험설계사를 하시면서 고객들과의 사이에 감동적 일화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분으로부터 약 3주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ㄱ님은 H시멘트 지방 공장 공장장이셨다 한다. 공장장님으로 계실 때에 집안 아주머니께 보험을 드셨고, 또 아래 직원들 및 친지들도 소개해 주셔서 고맙게 기억되는 분이시라  한다. 보험 드신 지도 그럭저럭 10년 세월이 넘었고 아주머니께서도 최근에는 하시던 일을 그만두신 터라 교류가 뜸했는데, 한 날 볼일이 있어서 친구 댁엘 가다가 그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ㄱ님을 만나셨다고 한다. 친근히 인사를 나누고서는 어쩐 일로 여기 계시냐고 여쭈었더니 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시더란다. 적지 않은 규모의 회사 공장장으로 계시던 분이 아파트 경비가 되어 만났음에도 부끄러워하거나 어색해 하지 않고 아주 경쾌하고 선들선들한 목소리로 대하심을 접하고 아주머니께서는 잠깐 동안 매우 난처한 마음으로 어정쩡하게 임했던 것이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러우셨단다. 년 전에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공장장 자리를 내놓고 퇴직을 하였으며 지금은 그 아파트 경비원이 되었다 한다.

“요즘 일자리 구하기도 매우 어려운데,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된 일이 아닙니까? 감사히 여기며,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시게 된 더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진 못 하였지만 허세나 가식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고, 공장장님으로 계실 때의 위풍당당하시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시면서 겸손하게 자신의 현 위치를 밝히시는 모습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집안 아주머니는 왠지 그득한 마음이셨다 한다. 한가해지면 한번 찾아뵙고 소주 한 잔 대접 올리며 그 분의 속 재산이 무엇인지 여쭙고 한 수 배우고 싶다.

 

며칠 전 산골에서 사는 구륜이네 가족이 방문했다. 여전히 세 가족 모두 산골스러운 모습 그대로이다. 구륜이 아빠는 허름한 무명 한복차림에 흰 무명천 두건을 썼다. 구륜이 엄마도 긴 머리채를 따 내리고, 어쩐 일로 그날은 운동화를 신었다. 구륜이 역시 늘 하던 대로 흰 고무신에 꽁지머리를 묶었다. 사내인지 여식인지 알 수 없도록 곱게 생긴데다가 머리까지 묶어놓으니 영락 계집애처럼 보인다. 그 구륜이가 이제 설 쇠면 여덟 살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할 나이가 된 것이다. 평소 욕심 없이 검소하고, 겸손하게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으로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인지라, 또 구륜이의 교육에 대하여조차도 획일화된 제도권 속에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는 듯 물 흐르듯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겠다고 하시던 그들인지라 나는 궁금했다.

“구륜이 학교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글쎄요, 아직 구륜이가 학교 갈 생각이 없다고 하니까 두고 보려고요. 가고 싶어 하면 보내고, 가기 싫어하면 안 보내고..........그냥 살아가는 것이 커다란 학교인걸요. 집에 있어도 하루 종일 가장 바쁜 사람이 구륜이입니다. 군불 지피고, 소 먹이도 갖다 주고, 부지런하게 산에도 오르고, 뒷산에 가서 나뭇가지도 주어오고, 지네 엄마 요리하는 것도 관여를 해야 하고.......하하하! 봄에는 모도 심고 고추 모종도 하며, 여름에는 감자도 캐고 노루랑 다람쥐랑 친구도 해 줘야 하고, 아래채 이모네 놀러 가기도 해야 하고.....................”

부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며 구륜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별로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듯, 초연한 모습들이었다. 문득 지난 여름, 구륜이네 산방토굴에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구륜이 엄마가 저녁밥을 짓는 동안 구륜이와 나, 그리고 구륜이 아빠는 산책을 갔는데 산등성을 오르락내리락 안내하는 대로 따랐다. 구륜이가 어찌도 사뿐하게 잘 걷는지 놀라웠고, 그리고 가는 길모퉁이서 검정콩 같은 것을 한 움큼 집어 들고서는 노루의 똥이라며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땅바닥에서 노루 발자국, 곰 발자국, 개미집 등을 발견하고는 설명해 주었다. 또 구륜이는 약초들도 많이 알고 있었고, 산삼도 알았다. 산책을 다녀와서는 구륜이가 아궁이에 군불 지피는 것도 안내해 주었고, 장작이 어느 정도 타서 숯불이 만들어지니까 밭에서 갓 따온 생 표고버섯에 소금을 발라 정성스럽게 굽더니 나에게 먹으라고 줬다. 그 과정을 함께하며 은근하면서도 충격적 감동을 받았다. 겨우 일곱 살 어린 아이의 삶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자연적이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될 듯한 모습으로서, 온전하게 보였다. 가끔씩 떠올리면 신비하게 여겨진다. 자연 속에서, 노루나 사슴들처럼, 나무나 풀들처럼, 저 구륜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제대로의 삶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물질문명에 깊게 의존되어 있는 우리네 삶이 풋풋하고 허허로운 자연에서 너무 멀리까지 온 듯, 갑자기 외로움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구륜이네는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산에서 나무 해다가 장작으로 군불지피고, 유기농으로 쌀과 채소 가꾸어 먹고, 약초와 칡을 캐다가 팔아서 필요한 것 구해 쓰고, 이웃으로 귀농해 오는 사람들 집 짓는 일 도와주며 농사법도 안내하고 등등 사람처럼 산다. 그러면서 늘 평화롭고 충만함을 느끼며 산다고 한다. 아직까지 이들 부부는 서로에게서 화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고, 아직까지 생활해 오면서 부족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온 그들이란다. 욕심 없는 마음, 천심(天心)이 이들의 속 재산인 것 같다. 더러 떠올리며 생활 속 검불을 점검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요즈음 매스컴에서 뉴스를 들어도 사람들을 만나도 온통 우울한 소식들이다. 세계가 경제 대란 시대에 접어들었다고들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으니, 대란이 온들 어느 틈새엔가 희망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위의 지점장님, 공장장님, 구륜이네 가족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 그 희망의 열쇠가 들어 있지도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의 속 살림을 다시 무장하며 기축년 새해에는 소의 성품을 닮아 더욱 묵묵히, 더욱 부지런하게, 그리고 더욱 천천히 발걸음하며 또 한 해를 엮어가 볼 것을 다짐한다. 아울러, 세상 행복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할까를 더욱 관심하며 새해를 연다.

 

 

2008년 12월의 마지막 날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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