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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10:34
제목
80. 뒷집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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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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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집 할머니

 

 

뒷집 할머니는 올해 초에 8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약 50여 가호가 깔끔하고 아담한 촌락을 이루고 있는 이 마을의 맨 끄트머리 동떨어진 두 집, 우리 명상의 집과 할머니의 집이다. 할머니 집은 40년, 50년 전의 시골풍경을 그린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산중 오두막집이다. 나지막한 판자지붕에다가 정감이 물씬 느껴지게 하는 돌담, 돌담 아래로 가지런하게 심어져 있는 부추, 문도 달려 있지 않아 일을 보면서 쭈그리고 앉아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통나무로 바닥이 되어 있는 완전 재래식 변소, 마당 귀퉁이에 있는 수북한 두엄자리 등 요즈음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풍경이다. 그 오두막집 구석구석에는, 누가 봐도 정성스럽고 부지런한 할머니의 손길이 느껴졌었다. 명상의 집을 방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허름한 듯하지만 아주 정갈하게 손질된 뒷집을 마치 민속촌 구경 나온 듯, 신기하다는 듯 그 집을 둘러보곤 했다.

18년 전 내가 이 마을로 이주해 왔을 때 할머니는 65세셨고, 지금 떠올려 보면 아직 정정한 일꾼의 시골 아주머니셨다. 가실 때쯤의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정하게 굳어버렸고, 다리와 허리에 통증이 심하여 읍내 보건소에 자주 다니셨다. 명절 혹은 여름 휴가철에나 사람들 소리가 웅성웅성 날 뿐, 간혹 동네 분들이 모여서 한담을 나누며 잠시 떠들썩할 뿐, 일년 내내 참 조용하기만 하던 뒷집, 지금은 아주 고요해져버렸다.

 

갈아먹을 땅뙈기 하나 없이 30대 중반에 홀로 되시어 가난한 살림 속에서 6남매를 키워내자 하시니 할머니께서는 한시 반시도 쉴 틈이 없었다 하신다. 내가 본 세월만 하더라도 가슴이 시리도록 애 쓰며 사셨다.

할머니네 집 옆에 약 50여 평의 빈 땅이 있다. 할머니의 친척 밭인데 할머니께서는 그곳에 무, 배추, 콩, 팥 등을 심어서 자녀들에게도 보내고 당신의 부식을 해결하셨다. 그 밖에 이웃집 논밭에 일을 나가신달지, 뒷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신달지, 산나물을 뜯어다가 말린달지, 눈이 펑펑 오거나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빼고는 잠깐도 쉬시는 날이 없었다. 할머니께서 경작하시는 그 밭에는 잡초 한 포기, 돌멩이 하나 없었고 땅이 매우 기름져 보였다. 시골 채소밭이 이렇게 꽃밭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렇듯 할머니께서는 어찌나 억척스럽게 일을 해 내던지 안쓰럽다 못해 어떤 때에는 밉기까지 할 때도 있었다. 그 할머니는 이제 그곳에 안 계신다.

 

할머니께서는 혼자 계시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바로 유명(幽明)을 달리 하셨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아무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가셨다. 할머니 가신 뒤 장롱 바닥에서 발견된 할머니의 통장에는 삼천 만 원의 돈이 있었다 한다, 나는 그 돈이 어떻게 모아졌을 것인가 18년 세월을 지켜본 이웃 사람으로서 나름의 짐작이 갔다. 가슴이 메었다. 된장국과 당신이 손수 기른 야채들만 주로 드시면서 알뜰살뜰 모아둔 몇 천 만 원, 동네일이나 이웃 마을 사과밭에 나가셔서 받은 한 푼 한 푼의 품삯을 모은 돈일 것이다. 또 봄이면 뒷산에 올라 고사리와 취나물을 채취하여 삶아 말려 읍내 시장에 내다 팔아서 바꾼 푼푼의 돈일 것이다. 자녀들이 명절 때 혹은 다달이 조금씩 보내온 용돈을, “자식들이 어떻게 번 돈일 것인데 내가 냉큼 쓸 수가 있나?” 하시면서 다 저축하셨을 것이다. 생선 한 토막도 제대로 안 사 드시며 아껴 모은 돈, 결국 할머니의 장례비용으로 쓰였다.자녀들에게 어머니 용돈 챙기는 기쁨의 기회를 주시더니, 또 자녀들에게 장례비용 부담도 덜어주셨다. 세상 부모님들의 애절한 마음 한 자락이 드러나는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화제이다.

 

할머니 가신 지 5개월 남짓 지났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진행 중이다. 그렇게 아름답던 할머니의 채소밭은 잡초가 무성하다. 먹음직스럽게 풍성하던 고추 상추 배추 등의 야채들 대신 거칠고 짙푸른 풀들이 그득하다. 그렇게 깔끔하고 신비하게 여겨지던 오두막집은 먼지와 잡풀로 수북하여 초라한 시골집이 되어 있다. 오뉴월에 불어오는 후덥지근한 바람도 할머니의 빈 집 마당에서는 싸늘한 듯 느껴진다. 사람의 삶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런 정도라니, 새삼 놀랍고 놀랍다. 할머니 안 계신 그 집에 이제는 지나는 사람의 발목을 붙드는 신비감과 아름다움은 없었다. 오히려, 장심이 약한 사람에게는 무섬증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 모두가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실감하는 생생한 현장이다.

 

할머니 안 계신 황량한 오두막집 마루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을 있어 보았다. 할머니의 삶의 흐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 그것이 할머니의 <삶>이었구나!” 하는 것을, 할머니 안 계신 흔적들에서 강렬하게 느낀다. 아이러니컬한 체험이다. 할머니의 삶이 사라진 그곳에서 할머니의 삶 내음이 더 짙게 가슴팍을 후비며 파고든다. 삶, 삶, 삶이라! 삶이 무엇인지 손아귀에 꽉 잡히는 듯하다.

 

<삶>이라는 것,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그것에 대하여 다시금 음미해본다. 그 삶이 어떠하든, 그 누구의 삶이든,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선(善)이요, 유일한 선일 수 있다. 아니 유일한 의미(意味)일 수 있다. 그 사람의 삶은 항상, 그 순간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절대적 현실이므로 절대가치일 수밖에 없다. 그 누구의 그 어떤 삶이라도, 최고의 존중으로 섬겨봄직한 좋은 이유이다.

 

죽음도 삶의 연장선상의 일이라고 논하는 이들도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다 해도 좋고 아니라 해도 좋다. 사실 마음공부인들에게 있어서는, 금생(今生)의 삶만을 논하고, 바로지금의 삶만을 논해 보기에도 여념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바로지금의 삶>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바로지금의 삶>, 뒷집 할머니에는 더 이상 없는 이 삶. 이 삶의 의미 정도만큼 뒷집 할머니의 모든 순간의 삶을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며, 다함없는 찬탄을 올린다. 그리고 가만히 읊조린다.시간 한번 내서 할머니의 오두막집을 깨끗하게 청소 한번 하리마고. 그것은 또 그 순간의 나의 삶일 것이려니, 또한 저승에서 할머니께서도 미소하시려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많이 울었다. 더러 울컥해졌다. 미안함과 아쉬움에서이다. 사과의 눈물이었다. 앞뒷집 외로이 살면서 좀 더 살갑게 해 드릴 것을, 좀 더 자주 찾아뵐 것을, 좀 더 자주 과일조각이라도 나눠드릴 것을 하면서 말이다. 그 생각을 다르게 고쳐먹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인간적 정서가 할머니에 대한 사랑인 양, 보은인 양, 위로인 양 허용해 보았다. 오늘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할머니의 삶>을 제대로 사랑하고 귀하게 모신 듯 마음이 평화롭고 훈훈하다. 맑고 자유하다.

 

 

2009년 6월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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