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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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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훈훈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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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세상

- 대원의 실천, 그 시작 -

 

연말(年末)이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눈발이 천지를 휘감는다. 한강도 얼었다 하고 기상청은 전국적으로 대설 주의보를 안내한다. 모두들 몸을 움츠리며 옷매무새를 단단히 고쳐 잡는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늘 그러하듯, 물가까지 기승을 부려 서민들의 마음에 냉기를 더한다. 올 한 해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계(界)에서도 유난한 해였던 것 같다.

이러한 때에, 우리네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미담(美談)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도 한다.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는 후원 소식들이다. 듣는 이들도 자신의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잔잔한 나눔의 온정(溫情)에 마음을 녹이며 위안을 얻으리라. 내가 그러하듯........

 

짤랑짤랑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겹고 호감이 간다. 우리의 마음을 선(善)하게 한다. 바쁜 일상(日常)으로 깜빡 잊고 있었던 아주 소중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웃을, 둘러보아야할 주변 이웃을 상기하게 한다. 유치원생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에서 곱게 내려놓이는 천 원 지폐 한 장의 온기, 젊은 청춘들의 환한 미소 속에서 건네지는 에너지 가득한 사랑,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넘긴 듯한 백발(白髮)의 노옹(老翁)께서 합장을 하고서 축복의 기도까지 올리며 넣어주시는 따사한 정성들에 가슴이 뭉클하다.

또, 큰 기업인에서부터 산골 마을 주민들, 코흘리개 초등생에 이르기까지 푼푼이 모은 성금의 마음들은 겨울 세상을 푸근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그저께 뉴스에는 얼굴 없는 한 천사의 10년 선행을 보도했다. 억대가 훨씬 넘는 금액의 현금을, 이름도 밝히지 아니하고, 한 두 해도 아니고 10년 동안이나............ 그것도 자녀들이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행하였다고. 이어 이러한 얼굴 없는 천사들 소식이 곳곳에서 불거진다.

어떤 분은 일년 내내, 매일 아침 이천 원 ARS 후원 전화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어느 시각 장애자 안마사께서는, 한달 수입의 <3분의 2>의 금액을 고아원이나 여러 시설 등에 기부하며 최저생활을 한다고 한다. 당신이 생(生)을 포기하고 싶은 정도로 어렵던 시절 따뜻한 후원을 받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얻었기에 그렇게 되돌려 드리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고아원 출신의 중국집 배달원 한 청년은, 수입의 대부분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성금으로 내어 놓는단다. 그의 말씀인즉, “후원이라는 것을, 나중에 형편이 넉넉해졌을 때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지금 가진 만큼에서 나누어 주는 것이 제대로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콧등이 시큰하다. 가슴이 뻐근해지며 숨통을 조이는 감동이다. 그 밖에 쌀 나누기 운동, 떡밥 나누기, 독거(獨居) 노인 돌보기, 몸 봉사, 기술 봉사, 지식 봉사, 무상 장기 기증 및 사후 재산 사회 환원 유언 소식 등 모두 나를 돌아보게 하는, 내가 가진 것들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운 덕행(德行)들이다. 마치 내가 후원을 받은 듯 넉넉하고 든든해지는 미담들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우리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하여, 다시 깊게 마음을 머물게 한다. 나의 모든 것들을 다 바치고 싶게 하는 따뜻한 지침이 되어준다.

한편, 어떤 내용에 대하여서는 연말연시용 후원이라는, 정치성이 농후한 후원이라는 등등의 빈축(嚬蹙)의 말도 떠돈다. 일회용이면 어떻고, 정치성이 있으면 어떠하리.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함께하지 않으면 참으로 어려운 이웃이 얼마든지 있고, 그 어떤 나눔이 되었건 나눔은 그들의 고충과 외로움을 녹여주는 난로(煖爐)가 되어줄 것이며, 삶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줄 것이 틀림없다. 그 어떤 나눔이 되었건 나눔은 세상을 꽃피우는 일이요, 세상을 살리는 일이다.

대상뿐만이 아니라 주체 역시 은혜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줄 수 있다는 기쁨, 상대가 기뻐함을 전달받는 뿌듯함, 마음의 평수가 넓혀지는 듯한 넉넉함, 또는 세상에 진 빚을 갚아간다는 홀가분함(?), 하늘이 기뻐하실 것을 느껴보는 경건함 등, 이 모두 은혜가 아니겠는가?

 

동사섭 문화 운동의 기본 모토는 대원(大願)이다. 우리 모두의 공통적이면서도 간절한 원(願)은 행복이다. 대원은, 자신의 행복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두 함께 행복해질 것을 빌고, 또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을 삶의 궁극 목적으로 삼는 큰 원을 의미한다.

대원의 삶을 자신의 몫으로 하기에는 너무 엄청나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일 것 또한 분명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대구에서 살고 있는 한 지인의 방문이 있었다. 차 한 잔과 한담(閑談)을 나누며, 아직 동사섭 수련을 경험하지 못한 분이기에 동사섭 문화에 대한 설명을 하던 차 대원(大願)에 대하여 안내해 드렸다. 그분의 하시는 말씀, “대원(大願)의 삶을 들으니 마음이 확 확장되는 듯 참 좋습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어찌 감히, 그렇게 큰 이상(理想)을 품을 수 있을까 하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였다.

사실 그분은 작은 분식집을 경영하던 남편이 작년에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셔서, 식당을 이어 받아 꾸려가다가 심한 불경기로 며칠 전 가게를 정리하고서는 두 아들을 데리고 살아가기조차 막막한 실정의 40대 초반의 부인이시다. 그렇게 대응하심직한 여건 속에 계신다. 나는 심심한 위로와 더불어 환하고 긍정적인 반응에 대한 정중한 찬사를 올렸다. 그러면서 조심스러이 말씀드렸다. “여사님, 현재 여사님께서 처해진 상황, 그와 같은 사정에 계신 분들이 또 있으시겠지요? 당장 다음 달 생활비 걱정, 아니 내일의 끼니 걱정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것이 잘 해결되었으면 하는 절박한 소망, 다른 일거리라도 얼른 생겨서 수입이 있어야할 것인데 하는 걱정, 이것을 헤쳐 나가려면 건강이라도 잃지 않아야할 터인데 하는 마음, 자식들이 사기(士氣)를 잃지 않아야할 텐데...........등등의 과제 위에 계신 분들이 더러 있을 겁니다. 여사님께서 그들을 위해, 함께 잘 풀어가 보자는 격려의 기도는 하실 수 있겠지요? 그 누구의 기도보다 더 애틋하고 절절한 기도가 되어드리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기도부터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여사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들 모두 이 차가운 난국을 잘 헤쳐 가야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납니다. 날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네요. 내 걱정에 빠져서, 내 코가 석 자나 되다보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성심껏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내 마음이 한결 여유가 생기고 넓어진 것 같아요. 스님, 고맙습니다. 앞으로 대원에 대하여, 기도부터 시작하는 대원의 삶에 대하여 생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울먹였다. 그리고 소리 내어 기도했다. 여사님 가족과 세상 모두의 기초생활 안정과 복지를 위하여, 나아가 더 큰 해탈행복을 위하여.............. 기도를 마치고는 당신도 세상행복에 작은 기여를 한 것 같다며, 아이처럼 맑고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시는 여사님의 모습이 마치 성모 마리아 같으셨다. 둘은 서로, 참으로 의미 있는 나눔이 되었다.

 

나눔의 시작은 이렇게, 성심어린 기도부터, 기도로서 사랑의 마음을 나누어 보는 것이다. 쌀은 미처 못 나누어도, 돈은 아직 못 나누어도, 시간과 몸 봉사는 끝내 못하더라도, 기도는 올릴 수 있다. 기도하면서, 매일 한번 씩 정도 세상 행복을 위해 기도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누어보는 거다.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따뜻한 세상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나는 지극한 108배 절을 올리며 하루를 연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온 세상에 다 바치리라는 주문(呪文)을 조용히 다진다.

 

어느덧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발목은 족히 잠길 듯하다. 예보대로의 대설이다. 세상 모두의 마음 곳간(庫間)에도 저렇게 소복이 복덕(福德)이 쌓이길 간절히 기원하며, 그 복덕을 서로서로 포근히 나누는 세상을 염원하며 또 한 해를 마감한다.

 

 

 

2009년 12월 30일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 daehwa@dongsasub.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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