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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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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거룩한 맹서(盟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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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맹서(盟誓)살아가면서 우리는 더러 맹서를 한다. 맹서란 심지(心地)를 굳게 다짐의 뜻이다. 맹서는 홀로 하기도 하고, 특정 상대에게 하기도 하며, 여러 대중 앞에서 하기도 하고, 종교적 의식을 통하여 하기도 한다. 맹서는 그 의미도 좋고, 그 단어에 서려있는 에너지도 좋다. 맹서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숙연해진다.

홀로 무언가를 깊고, 굳게 다질 때의 맹서도 해 보았고, 젊은 시절 사랑의 언약도 해 보았으며, 상황 상황에 따라 크고 작은 많은 약조도 해 보았고, 출가 입산 당시 많은 대중 앞에서 부처님께 굳은 서약도 해 보았다. 그 어느 것이 되었건 맹서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시퍼런 의지의 칼날이어서 자칫 조금만 소홀히 하여도 날이 넘어져 심장이 베일까 두려운 긴장감을 갖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세웠던 금강석(金剛石) 같고, 옥(玉) 같은 그 어떤 맹서도 온전히 다 지켜 내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그렇기는 하나, 인간살이 중에서 매우 귀하고 아름다운 행위 하나가 맹서일 것이다. 무언가를 맹서할 때의 결연한 그 마음이 좋고, 결연한 에너지는 마음속의 여타의 자질구레한 가치들을 내려놓게 한다.

20대 때 불교 공부를 시작할 때의 신심(信心)은 얼마나 그득했던지, 집에서 제 머리를 스스로 깎고 승복을 맞춰 숨겨 놓고서는, 밤이면 승복을 꺼내 입고 참선을 하며 수행자 흉내를 내며 때를 기다리다가 승(僧)이 된지라 나날이 은혜롭고 즐겁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선민(選民)이나 된 듯 자부심이 대단했고, 천하의 주인인 듯 웬만한 일들은 일 같지도 않게 여겨졌으며, 금방이라도 대도(大道)를 이루게 될 듯, 텅 빈 마음에 희망으로만 꽉 찬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출가한 이듬해의 어느 날, 은사 스님의 작은 말씀 한 마디에,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임에도, 신경이 곤두서고 마음이 몹시 아팠다. 공부 과정의 어떤 시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얼마나 작고 못나게 여겨지며 실망스럽던지, 자신을 수용하기가 못내 어려웠다. 나는 독한 마음을 내어 손가락을 촛불에 지지며, 그 뜨거움을 참고 살을 태워 녹이듯 아집(我執)의 성(城)을 녹여 없애리라 다짐하는 맹서를 했었다. 실신(失神)을 할 정도의 고통을 참고 해 낸 굳은 맹서의 약효는 한 세월 동안 갔다. 다시 오직 대의(大義)를 향한 대담한 의지로서의 오롯한 정진이 이어졌건만, 그 뜨거운 불길 맹서 또한 얼마 가지를 못했다. 하지만, <나다> 하는 상(相)이 그저 고개를 쳐들고 중생놀음을 하기로는 지금 나이까지도 크게 달라진 바 없다 할지라도, 손가락 한 마디와 바꾼 그 맹서를 헛되이 취급하지는 않는다. 맹서란, 할 때마다 그만큼의 공덕이 꼭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도 나는 매일, 수차례의 맹서를 하곤 한다.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밤에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그리고 매일 108참배를 올리며, 낮 시간의 틈틈이, 거듭 되새기는 맹서가 있다. 지금의 맹서는 그렇게 치열하지도 않으며 뜨겁지도 않다. 그렇게 야단스럽지도 않고 교만스럽지도 않다. 그저 조용하고, 그윽하면서도 사뭇 진지하다. 이 맹서를 또 어기면 어쩔까 조바심하지도 않으며, 번번이 어기고 또 어겨도 끝없이 관대하다. 그냥 해 갈 뿐으로서 한다. 하면 한 만큼의 공덕이 쌓여갈 것이라는 믿음과 아울러, 하면 한 만큼의 소득이 쌓이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며, 그렇게 거듭해 가고 있다. 그 어떤 맹서를.

 

맹서1.

세상의 주인인 나는,
‘나’라 할 것이 없는 나는,
없다 하나 이렇게 묘(妙)하게 존재하는 나는,
그래서 보살도의 도구로서 삼고자 하는 나는,
하여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나는,
나의 행복뿐만이 아니라,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나아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의 맑고 밝은 기운을 위하여,

안으로 돈망(頓忘)과 지족(知足)과 비아(非我) 등으로 수심(修心) 잘 하여 마음천국을 만들고,

밖으로 보는 눈 책임, 보이는 모습 책임 및 교류를 잘 하여 관계천국을 만들며,
있는 곳에서 맡은 바 소임 외의 제반 선(善)한 일들을 잘 하여 세상천국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맹서2.

고통 받는 뭇 생명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오며,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먼저, 끝도 없이 일어나는 모든 번뇌를 다 녹여서 끝내는 큰 해탈(解脫)을 이루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지혜 무궁한 성현들의 법문을 다 배워 담겠습니다.

이러히 불도(佛道)를 다 이루겠습니다.

맹서1은 동사섭인으로서의 서원(誓願)이다. <5요선언(五要宣言)>이라 하여, 동사섭인들의 삶의 모토이다. 맹서2는 불자(佛子)로서의 발원(發願)이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이라 하여 불자들의 삶의 목표이다. 위의 둘은 뜯어보면 같은 내용이다. 이렇게 발원을 하고나면, 이기적 주체로서 살아왔던 에너지가 조금씩 녹아 사라지는 듯 느껴진다. 모든 행위의 동기를 세상행복이라 확정하였으니, 늘 향하는 목표점이 분명하다. 또한 실족의 포인트도 명확하다. 삶의 모든 행위를 점검하는 잣대가 이러히 선명하니, 삶의 모든 순간이 그때그때 정리, 정돈된다. 주인의 정체, 무아(無我)의 정체, 보살(菩薩)의 정체로서 있는가, 세상행복을 소망하는 대원(大願)으로 있는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천국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모든 관계를 조화롭게 잘 하고 있는가,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기타 선행들을 주저 없이 잘 하고 있는가, 즉 정체⦁대원⦁수심⦁화합⦁작선 인격의 점검이다. 동사섭 문화의 바탕 가치관이요, 불자들의 기본 가치관이다. 살아내 봄직한 가치가 있을듯하여 스스로 고이 영접한 자신의 가치관을, 거듭 되새기면서 읊조려보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맹서라 한다. 거룩한 맹서라 부른다.

세상의 주인인 나는 거리의 쓰레기를 성의 있게 줍는다. 나라의 주인인 나는 국토를 정토(淨土)로 지키기 위해 환경오염 예방에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나라 할 것이 없는 나는, 아집과 편견이 엿보일 때면 합리적 사고력을 동원하여 무아(無我), 공(空)의 정체를 챙기며 해탈을 추구한다. 스스로 교만과 비정(非情)이 들킬 때마다, 화합천국을 유념하며 겸손과 자비의 덕성을 다독인다. 나의 이기심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고통과 전쟁을 넘어서기 위해서이다.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괜찮은 노력이라 여겨진다. 가치 있는 삶이라 여겨진다. 권장할 만한 덕성이라 여겨진다. 하늘이 보시기에 기쁘실 듯 여겨진다.

동사섭인들은 모든 삶의 순간을 <5요선언>으로 시작하자고 운동을 편다. 불자들의 모든 행사는 사홍서원으로 마무리한다. 아름다운 문화운동이다. 나는 오늘도, 이 세상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정체⦁대원⦁수심⦁화합⦁작선의 덕성을 높여가겠노라고 서원하며 하루를 연다.

 

2010년 3월 20일
명상의 집 : 대화 합장 (daehwa@dongsasu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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