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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2 오후 07:37
제목
97. 가진 것, 그리고 가지지 않은 것
작성자
관리자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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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그리고 가지지 않은 것>

 

소극적 성취란 이미 있고 이미 이룬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곧 지족(知足)이 그것이요 범사(凡事)에 감사함이 그것이다. 소극적 성취에 눈 뜨는 것이 중요하다. 용타 스님,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 p.249

 

우리는 자칫 적극적 성취의 형이상학적이고 미학적인 의미에 매몰되어 소극적 성취를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소극적 성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가진 것이므로 마땅히 있었던 것처럼 가진 채 미루어 두고 가지지 못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일쑤다. 그래서 가진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여 함부로 대하고 홀대하여 그것의 의미가 퇴색되고 헐거워져 쓸 모 없게 되었을 때에야 그 귀함을 알아차리게 되는 우둔함을 범한다.

나는 시골 태생이다.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시골 태생인 것을 부끄럽다 생각해 보지 않았다. 모두들 읍내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이고 그런 의식도 생기기 전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 일부 학생들이 도시로 진학하면서 내가 도시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일말의 부끄러움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즈음부터 다니고 있는 학교가 자랑스럽게 생각되지도 않았고 공부도 그리 재미나지 않았다. 게다가 어디서든 나를 소개할 때마다 시골 태생이라는 사실이 슬몃 부끄러움으로 작용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부끄러움이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도시에 가치를 두고 그 가치만이 진정성을 갖고 있다 생각했던 때라 시골이 가지고 있는 무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터다.

그러나 지금, 나는 시골 태생인 것이 자랑스럽다. 우선은 자연을 알고 있어 스스로 만족스럽고 그 자연이 나를 건강하게 키웠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는 가슴이 뿌듯하기조차 하다. 봄이 되면 지난 늦가을에 파종한 보리가 겨울을 견뎌내고 웃자라는 것을 막기 위해 보리밟기를 했으며 ‘독새’를 매야만 보리가 건강하게 자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3월이면 못자리를 만들고 6월 하지 무렵 감자를 캐 먹게 될 때쯤이면 보리를 베어 그 자리에 다시 모를 심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6월쯤 고구마 순을 잘라 다시 밭이랑에 심으면 고구마가 신기하게도 줄기에서 주먹만한 씨알을 맺는다는 것. 그 6월에 마늘과 양파를 캐고 그렇게 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먹고 벼는 무럭무럭 자라 가을에 수확을 하고 그 수확한 자리에 다시 보리를 파종한다는 순환적 농사법을 잘 알고 있어 세상이 어떻게 돌고 있는지 자연을 통해 온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게다가 사마귀가 교미 후 수컷은 암컷에게 몸을 내어 주고, 은행나무는 암수가 있으며, 다슬기와 고동은 일급수에서만 자란다는 사실과 그 다슬기가 있어야 반딧불이가 생긴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내가 도시에 살았더라면 알 턱이 없는 일들이다.

어릴 적엔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욕망이 큰 법.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 욕망의 허상도 함께 알아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가진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마음은 부자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자족하지 못하고 욕망을 꿈꾼다. 며칠 전 영화배우 로빈 윌리암스가 생을 등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굿 모닝 베트남>, <죽은 시인의 사회>, <미세스 다웃 파이어>, <굿 윌 헌팅> 등 제목만 봐도 대단한 배우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수많은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던 그가 왜 삶을 마감했을까. 그는 물질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 나름의 고통은 있었겠지만 그것은 지족(知足)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가진 것을 제대로 알고 있었더라면, 그것들이 풍요롭다 못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많았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삶을 마감한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모두(冒頭)에 밝힌 용타 큰스님의 말씀처럼 ‘소극적 성취’는 매우 중요하다. 그 ‘소극적 성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적극적 성취’ 또한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음을 아는 것.이미 풍부롭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원대한 희망보다 중요하다. ‘없음’을 생각하면 그 ‘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쉬이 알게 된다. 손가락이 온전하여 글을 쓸 수 있고 발가락이 온전하여 제대로 걸을 수 있으며 눈이 온전하여 볼 수 있으며 입이 온전하여 말할 수 있다는 이 사실 앞에 더한 풍요로움은 없으리라. 지족하시라. 그러면 삶이 윤택하고 풍성해진다. <끝>

글. 한뜻님 (yso14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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