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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2 오후 07:56
제목
106. 수심(修心)의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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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peng-festival-thailand

<수심(修心)의 수호천사>

동사섭 일반과정에 처음 참여한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혼자 불교책만 뒤적이다 어떻게 인연되어 난생 처음 수련장이란 곳엘 갔더니 무슨 느낌 나누기라는 걸 하라는 것 아닌가. 나는 불교 공부 하러 왔는데 무슨 뜽금 없는 느낌이지? 아무튼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그랬더니 <저는 이러저러해서 기쁩니다. 아, 이러저러 해서 그러하시다고요? 그러저러하시다면 정말 그러하시겠군요. 저도 이러저러해서 그러그러합니다.>하는 걸 해보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 부자연스런 노릇을 왜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분반 마스터에게 이렇게 덤비기까지 했다. “저는요 우리집 꽃밭에 복수초 꽃봉오리가 솟은 걸 보면 야아!! 복수초 꽃봉오리 나왔다!! 하고 소리 소리 외치며 남편을 부르지 ‘나는 복수초 꽃봉오리가 솟아나서 매우 기쁩니다.’ 식으로 말하지 않아요. 왜 이런 연습을 해야 되지요?”

그런데 느낌 공부가 화합 공부의 첫 스텝이란다. 불교 공부에 ‘느낌’이니, ‘화합’이니하는 말이 들어간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어디에서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동사섭을 만나기까지 나에게는 불교라 하면 오로지 수심뿐이었다.

“왜 수심을 하는가?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수심을 하는 것이다. 화합 없이 수심만 있으면 그 수심은 <잘 났어, 정말!>이고 수심 없이 화합만 있으면 그 화합은 <깡통소리>이다.”

알고 보니 동사섭 수련은 화합과 수심이라는 두 축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수심의 수준이란 것은 화합의 정도로 적라나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정말 그랬다. 수심은 화합을 높이고 화합은 수심을 깊게 한다. 수심과 화합은 그렇게 긴밀하게 상호 작용을 한다. 동사섭의 가르침은 수심과 화합 양쪽에서 파고들어가면서 빠른 속도로 내 속에 변화를 일으켰다. 새삼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여지없이 <잘 났어, 정말!> 족속에 속해 있었다. 번잡스런 도시 생활을 접고 강원도 산골에 들어와 집에 조그만 차실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곳에서 방석 위에 앉곤 했다. 물론 졸거나 딴전 피우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했는데 그 차분함을 한 자락 들추면 무언가 싸늘했다. 주변사람들에게는 그저 예의를 지켰을 뿐 별다른 교류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혼자 하고 있던 짓은 수심도 아니고 그저 자기방어였던 것 같았다. 세상인이 자신의 가치에 별로 응해주지도 않고 세상이 내 뜻대로 굴러가지도 않으니 저 혼자 자기 가치를 고수하고 싶어 한, 그와 비슷한 짓거리였던 것 같다. 아마도 동사섭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나는 오로지 자기식의 수심이라는 메마른 글자에만 매달려 있을 터였다.

수심이란 어떤 고귀한 가치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치들을 넘어서서 마음을 끝없이 열리게 하는 것임을 이해하였을 때 나의 세계는 완전히 뒤집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세세생생 길들여진 습이 어디 쉽게 녹아버리겠는가. 내 생각, 내 가치를 내세우고자 하는 에너지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있는 동안엔 마음은 쉽게 천국이 된다. 본래 청정, 본래 평화 속에 살고 있는 나무와 꽃들 사이에서, 눈곱만큼의 꿀만 있으면 대만족하는 벌 나비 사이에서 무슨 부딪칠 일이 있겠는가. 홀로 순수, 홀로 수심은 정말로 제 잘난 맛에 취해있는 수작이었다. 수심은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심은 결코 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역경계에 부딪쳤을 때가 가장 좋은 공부 시간이다.”

수심은 청정지역에서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역경계 속에서 부대끼며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역경계 중의 역경계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가 또 있겠는가. 자신의 생각조차 뒷간 갈 적과 올 적이 다르지 않는가. 이 세상에는 나를 포함한 - 어떤 의미에선 가장 강력한 역경계가 이 <나>였다 - 70 억의 역경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이들은 모두 나의 수심을 활구로 살아나게 하는 수심의 수호천사들이다. 그 수호천사들은 이 마음을 어느 틀에도 가두지 않고 끝없이 열어가는 쫀쫀한 현장 실습을 하게 한다. 수심은 역경계와의 화합이라는 밥을 먹고 키가 커간다. 작아지려면 터럭 하나도 용납할 수 없게 비좁은 이 마음을 보살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나가게 하는 수호천사들. 중중 연기로 엮어져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는 우리의 세계, 이 아름답고 신비한 세계의 일원이 되었음에 어찌 고맙지 아니하랴!

글. 선혜님

Morning-Prayers-by-Yan-Ba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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