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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2 오후 08:11
제목
111. 화를 옮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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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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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를 옮기지 않는다>

논어 옹야 제2장에 나오는 不遷怒 不貳過는 나의 좌우명 중의 하나이다.

 

애공이 묻기를, “제자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공자 대답하여 가라사대 “안회가 학문을 좋아하여 성냄을 옮기지 아니하며, 허물을 두 번 짓지 않더니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은지라 이제는 없으니 학문을 좋아하는 자를 듣지 못했나이다.” 哀公이 問弟子 孰爲好學이니잇고 孔子 對曰 有顔回者 好學하야 不遷怒하며 不貳過하더니 不幸短命死矣라 今也則亡하니 未聞好學者也케이다

 

朱子는 이를 해석하기를 ‘갑에게서 성난 것을 을에게 옮기지 아니하고, 전에 잘못한 것을 다음에 다시 아니한다. 안자가 자기를 이겨낸 공이 이와 같음에 이르니 가히 진실로 학문을 좋아한다고 일컬을 만하다.’ (怒於甲者 不移於乙 過於前者 不復於後 顔子 克己之功 至於如此 可謂眞好學矣.) 라고 하였다.

 

程子는 이르기를 ‘안자의 성냄은 그 일에 있지 자기에게 있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옮기지 아니하고, 불선함이 있거든 일찍이 알지 못함이 없으며, 그것을 알게 되면 일찍이 다시 행하지 아니하니 허물을 두 번 짓지 아니함이라.’ (程子 曰 顔子之怒 在物不在己 故 不遷 有不善 未嘗不知 知之 未嘗復行 不貳過也.)

 

‘기쁘고 성냄이 일에 있으면 이치가 마땅히 기쁘고 성내는 것이고 혈기에 있지 아니하니 옮기지 아니함이라.’ (喜怒在事 則理之當喜怒者也 不在血氣 則不遷.)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침에 예쁘고 추함이 물건에 있어 물건에 따라 응할 뿐이니 어찌 옮김이 있으리오.’ (如鑑之照物 姸媸在彼 隨物應之而已 何遷之有)

 

‘안자와 같은 경지면 어찌 불선함이 있으리오. 이른바 불선은 다만 이 작은 어긋남과 실수가 있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어긋남과 실수가 있다면 곧바로 능히 알고,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곧바로 다시는 싹터 나오지 않게 하니라. (如顔子地位 豈有不善 所謂不善 只是微有差失 纔差失 便能知之 纔知之 便更不萌作.)

 

 

공자 당시의 학문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공자는 학식보다 덕행을 강조하였다. 덕행을 잘 하면 문장을 익히지 않았더라도 이를 배운 자(學者)라고 하였다. 공자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하나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아는 것을 행하지 않는 자는 참으로 아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왕양명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한다. 앎과 실천, 인식과 행위의 문제를 이원적으로 보지 않고 일원적으로 설명한다.

‘마음(心)의 본래적 활동인 知(理)는 필연적으로 의지를 수반하여 행위로 표현된다. 知의 속성이 곧 行으로서, 行이 배제된 知는 진정한 의미의 知라 할 수 없다.’ 는 것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자신이 행하지 못하는 일은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배운 자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학문을 좋아한다고 하려면 안자의 경지는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화를 옮기지 않으며 한번 잘못한 것은 두 번 다시 하지 않는’ 경지라야 학문을 좋아 한다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로에서 빰 맞고 한강에서 눈 홀기는 사람.’ ‘가정불화를 직장에 까지 가져가서 짜증부리는 사람.’ 직장에서 화난 일을 가정에서 푸는 사람.‘ 등은 화를 옮기는 사람일 것이다.

 

거울은 무엇에 집착하지 않는다. 시비하지 않는다. 다만 비춰줄 뿐.

꽃이 비치면 꽃을 비춰주고, 시궁창을 비추면 시궁창을 비춰주고.

꽃이 비친다고 기뻐하지 않고, 시궁창이 비친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떡이 비친다고 떡이 되지도 않고, 똥이 비친다고 똥이 되지도 않는다.

웃는 얼굴을 비추면 웃는 얼굴로 돌려주고, 찌푸린 얼굴을 비추면 찌푸린 얼굴을 되돌린다.

 

그런데 내 마음은 어떤가?

꽃이 비치면 기뻐하고, 똥이 비치면 싫어한다.

기쁘면 내 마음이, 곧 내가 기쁨이 되고, 화가 나면 내 마음이, 내가 화가 된다. 그러니 기쁨을 옮기고 성냄도 옮긴다. 내 마음이 기쁨으로 물결치고, 성냄으로 요동치니 가라앉히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라앉기 전에는 옮기게 된다.

 

그러나 성인들의 도인들의 마음은 거울 같아서 무심히 되비칠 뿐 시비가 없으니 그것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비추는 것에 따라 되비치는 반응을 적절히 할 뿐 마음은 명경지수(明鏡止水)여서 옮기지 않는다. 배우는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어떤 역할이 맡겨지면 그 역할을 실감나게 하되 자신이 그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역할도 실감나게 할 수 있으며, 명배우일수록 그 전환이 빠르다.

 

잘못된 행위를 거듭하면 습관이 된다. 거듭되기 전에, 습관이 되기 전에 고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이미 습관으로 고착된 것이라도 힘써 행하면 고칠 수 있다. 크게 깨지면 단번에 고칠 수도 있겠으나 보통은 거듭 힘써야 한다. 습관이 단번에 형성되지 않듯 습관을 고치려면 습관이 되기까지 행했던 것보다 많은 횟수를 거듭해야 잘못을 하지 않는 새로운 습관이 형성될 것이다.

 

어떤 것을 좌우명이라 한다면 아직은 그것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이른다. 그것이 온전히 내가 된다면 더 이상 그것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경계에 마주칠 때 떠올리면 전환이 빨라지고, 내 수준만큼 다룰 수 있고, 그만큼 평온할 수 있다.

글. 도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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