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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2 오후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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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뿐’ 선생에 대한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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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 선생에 대한 회고

 

동사섭 수심장 ‘나지사 명상’의 예화로 흔희 ‘뿐 선생’의 예화를 든다.

개성고보와 연세대 졸업하고 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던 ‘뿐 장규상’ 선생은 첼리스트였고, ‘뿐’ 통을 한 도인이셨다. 삼동원에서 동사섭 할 때 방문하셔서 연주와 강의를 잠간 하신 적도 있다.

 

나는 95년경 ‘뿐 선생’을 모시고 일주일간 전남지방 일원을 여행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때의 배움을 정리해 본다.

 

뿐 선생님의 철학은 ‘세 가지 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본래의 뿐’, ‘착각 뿐’, ‘환장(換場)한 뿐’

 

‘본래의 뿐’은 내 수준에서 해석하면 동사섭의 개념이전과 흡사한 순수의식이다. 이것은 절대계라고 할 수 있다. 무한 가능성이 가능성으로만 있다.

 

‘착각 뿐’이란 우리가 개념으로 알고 있는 모두가 착각이라는 것이다.

여행 중 어떤 명제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하니

뿐 선생은 “아니야, ‘저는 이렇게 착각합니다.’라고 해야 해!” “우리는 우주 굴에 갇혀서 온갖 고통 창조를 계속한다.” "인간의 눈은 착각을 보는 도구다."라고 하신다.

 

착각을 거친 ‘환장(換場)한 뿐’은 체험을 통한 자기인식을 통해 얻어진 묘유(妙有)의 세계이다.

그분은 몸, 마음, 영혼까지도 ‘착각’을 일으키는 장치로 생각하고 자신이 발견한 절대세계를 ‘뿐’이라고 했다.

 

뿐 선생은 “수련이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는 것이 수련이야.” 하고, ‘뿐 동작’이라는 몇 동작들을 가르쳤는데, 예를 들면

‘앉거나 설 때 한발을 들고 슬로비디오처럼 최대한 천천히 안거나 서도록’ 하며,

‘온몸에 힘을 빼고 털썩 쓰러져 쓰러진 자세 그대로 쉬게 하는’ 등의 동작들이다.

 

또한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바로 ‘반응’하지 않고 충분히 ‘느끼도록’ 어딘가 가려우면 바로 긁지 않고 최대한 천천히 손을 움직여 가려운 곳에 가도록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면 가려움증이 증폭되다가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손이 이르기 전에 가려움은 사라져서 가려운 곳을 쓰다듬는 것으로 충분하게 된다.

이런 동작들은 모두 ‘착각’을 ‘뿐’으로 환장(換場)하기 위한 것들이다.

 

뿐 선생은 “우리는 순간순간 무언가와 포옹을 하며 산다. 그래서 우리와 포옹하는 그 분에게 우리의 마음이 떠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밥을 먹을 때는 밥님과 내가 포옹하는 시간이니 밥님에게 온전히 내 마음이 함께해야 한다. 식사 중 말을 하는 것은 밥님에게 실례되는 일이다.” 이렇게 식사를 하면 밥님에게 절로 감사의 마음이 일어난다.

“문을 열고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문님과 내가 마음으로 포옹을 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변기님과 마음속으로 포옹을 하면 변기님은 나보다 더 도력이 높은 분 같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사람의 똥을 공손히 받아 처리할 수 없겠는데 변기님은 무심히 그런 일을 한다.”

“걸을 때는 땅님과 내가 포옹하는 순간이니 땅님에게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

“포옹을 할 때는 숨을 멈추어야 그 분을 느낄 수 있다. 잠간 숨을 멈추며 그 분을 느껴라.”

이렇게 매 순간 만나는 대상과 포옹하는 마음으로 만나면 조심스러워지며 ‘지금 여기’에 온전히 깨어 있게 된다.

 

차를 마시면서 찻잔을 소리가 탁 나도록 탁자에 내려놓았더니

“이순간은 찻잔과 탁자가 포옹하는 순간인데 무슨 포옹이 그렇게 거칠까?”

“일 거수 일 투족을 깨어있는 상태에서 느끼면서 하라. 차를 마실 때에도 평소보다 두 배정도 느린 속도로 움직이면서, 잔을 들 때, 마실 때, 내려놓을 때, 심지어 찻잔에 비어있는 공간까지 속속들이 느껴 보라.”하신다.

또 한손으로 찻잔을 들고 마셨더니

“왜 한손으로 마시느냐?” 하신다.

“그냥 습관이 그렇게 돼서요.”하니

“다른 사람에게 차를 권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

“물론 두 손으로 드리지요.”

“왜 다른 사람에게는 두 손으로 드리면서 자신에게는 한 손으로 드리느냐? 이것은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신다.

효경(孝經)에 ‘나의 몸은 부모님께서 주신 것으로써 함부로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글이 있다. 공자가 제자인 증자에게 효에 대해 가르친 내용이다. 내 몸은 부모님께서 주신 것으로 부모님의 걸작이니 내 것이라 착각하고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조상님의 제사에는 정성을 다하여 예(禮)를 올리면서 살아있는 조상인 내 몸은 함부로 한다.

스스로는 존중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를 사랑한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

내 몸은 조상님들이 DNA를 통해 살아계시니 조상님 모시듯 해야 할 것이다. 내 마음도 내가 만들지 않았으니 내 것이 아니다. 빌려 쓰고 있을 뿐.

 

당시 열매님은 여수에서 상담실에 근무하고 계셨다. 뿐 선생을 모시고 간다고 했더니 7, 8명쯤 사람을 모아 놓고 기다리셨다. 뿐 선생이 첼로로 ‘고향의 봄’ 연주를 하시며 같이 노래하자고 했다. 크게 합창을 했더니

“왜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노래하느냐? 소리를 낮추어 자신을 위해 노래하라! 더 작게, 더 작게, 더 더 더” 하며 첼로 소리를 실낱같이 줄이며 들릴락 말락 할 정도로 작고 가늘게 연주하셨다.

그러자 함께 노래하던 순수님이 오열을 터트렸다.

다들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만 들리게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선생의 첼로 연주는 독특하다.

‘뿐 세계’에서 연주한다고 한다.

그 분은 청중이 한 사람이든 백 사람이든 관계없이 지그시 눈을 감고 ‘뿐 세계’에서 연주하신다. 때로는 고요한 바다의 금빛 물결처럼,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때로는 폭풍우 몰아치는 늦여름 밤처럼, 한 많은 여인의 한풀이처럼, 거문고 소리처럼 웅장하게, 가야금 선율처럼 속삭이듯 자유자재하다.

 

영성가 이구상씨는 ‘뿐 선생’에 대하여 ‘삼라만상의 근원인 절대계를 ‘뿐’이라고 이름 짓고, 사랑과 평화의 에너지인 뿐의 울림을 첼로의 선율에 담아 전하는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뿐의 울림은 잠든 영혼을 일깨워 주고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주기도 했다. 그의 연주에 동참한 어린이들은 성인(聖人)들은 물론, 영적 존재들과 교감하여 통신할 수 있는 채널러로서의 능력이 계발되기도 했다. 그리고 ‘뿐 선생’과의 만남으로 내 몸과 마음, 영혼은 내가 아닌 ‘나의 것’으로 내 삶의 연출도구임을 알게 되었다.’ 라고 했다.

 

그 분은 자신이 깨달은 순수의식의 에너지를 첼로를 통해 전했다. 누군가 그를 만나러 방에 들어가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첼로만 켰다고 한다. 그러면 마음이 순수한 사람들은 금세 영안이 열렸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은 한 대학총장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뿐 선생을 찾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뿐 선생이 첼로를 연주했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 있던 아이들이 “영계가 보인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총장은 자신이 궁금한 것을 아이에게 질문하게 했다.

우선 “부처님과 예수님 가운데 누가 더 도가 높냐?”고 물었다. 붓다가 답했다.

“예수님이 높으십니다.”

다음에 예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예수가 답했다.

“부처님이 높으십니다.”

총장은 이어 절집과 교회가 그들의 가르침을 잘 잇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붓다는 “나의 도가 아니다.”라고 했고 예수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2007.10.26. 한겨레 신문 인터넷 판에서)

 

"있는 것은 그대로 있는 것일 뿐", "나눠줄 때는 나눠줄 뿐", "좋다면 좋을 뿐“

어디에도 매달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사랑일 '뿐'”

 

‘뿐 통’을 한 후 사념(邪念)이 일어나면 “뿐! 뿐! 뿐!”하며 자신의 얼굴을(뺨을) 빨개지도록 후려 갈겼다.

 

말년에는 해관 장두석 선생이 이끄는 ‘민족생활학교’에서 난치병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위해 연주하는 삶을 살았다. 그즈음 “저들의 고통을 내가 안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뵌 것은 1997년 4월 국선도 창립30주년기념식에서 이다. 선생은 그 때는 분신처럼 함께하던 첼로도 놓으셨다. 선생께서 자청하여 피아노로 ‘천부경’을 연주하시겠다고 해서 부탁드렸더니 온 몸으로 연주하신다. 때로는 팔꿈치로, 때로는 엉덩이로, 때로는 이마로, 때로는 구두주걱으로, 손가락으로.

그러나 불협화음 하나 없이 물 흐르듯 부드럽고 유연하게, 천둥치듯 우렁차게, 졸리듯 무겁고 가녀리게 ‘뿐 세계’ ‘천부경’의 세계로 안내하신다. 연주 후 "피아노도 배우셨어요?"했더니 "배운적 없어."하셨다.

 

1998년 선생의 여망대로 세상의 고통을 안고 장암에 걸리셔서 하혈을 하면서도 ‘뿐 멘스’한다고 하시며 웃으셨다고 한다. 1999년 70세를 일기로 ‘뿐 세계’로 옮겨 가셨다.

 

2014년 10월 10일 도안 최동춘

 

 

<모셔온 글>

천재 첼리스트의 꿈 (장규상)

 

“정말 멋진 연주였네! 이 첼로는 나에게는 사치야, 자네에게 더 잘 어울릴 걸세.“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은 천재적인 소질을 타고난 장규상이라는 첼리스트에게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첼로를 선물했다.

 

장규상은 시립교향악단에서 유능한 첼리스트였고 서양화가와 결혼하여 후에 유명한 가수가 된 현이와 덕이라는 남매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꿈이 한 가지 있었다. 특권 계층만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첼로의 선율을 세상의 가난하고 힘든 사람에게도 들려주고 싶다는 것 이었다.

 

장규상은 첼로를 통해 사람들의 고단하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했는데 그는 중요한 건 마음뿐이고 필요한 건 사람뿐이라는 “뿐” 철학을 만들어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면 나눌수록 가족 안에서는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딸 덕이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장규상은 아내와 이혼했고 1990년 2월에는 혀암에 걸린 아들 현이를 정성으로 간호하던 덕이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 해 8월에는 아들 현이 마저 작별을 고하기에 이른다.

 

두 아이를 잃은 장규상은 첼로 하나를 들고 머나 먼 여행을 떠났으며 결핵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나병을 앓는 사람들 고아원. 양로원. 교도소등 사랑이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지 찾아가 첼로를 켜며 희망과 행복을 전해 주었다.

 

1999년 장규상 마저도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려 할 때 그는 말했다.

 

“자유의 세계로 떠납니다. 좀 더 사랑을 전해 주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月刊 좋은생각 에서 12월호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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