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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2 오후 09:19
제목
128. 고통의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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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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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존재 이유

 

바람이 낙엽들을 하늘 속으로 휘몰아대고 있다. 이제 정말 겨울이다. 김장을 끝내고 난방유도 가득 넣고는 따스한 창가에서 이렇게 태평스레 겨울나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돌아보니 겨울을 치른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우리 가족도 제법 오랫동안 추운 겨울을 견디어야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던 해 겨울, 월급으로 지하실 가득 연탄을 들여 놓았을 때 기뻐하던 엄마가 떠오른다. 연탄, 쌀, 김치, 그것이 월동 준비의 기본이었지만 그 기본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엄마는 엄청 고생을 해야 했다.

이제는 대한민국 경제 수준이 세계 7 위니 8 위니 하는 시절이니 그런 고생담은 추억이 되었다.
그렇다면 다들 편안한 걸까.
양말과 내복을 기워 입고 덜덜 떠는 대신 브랜드 덕다운 재킷을 입고 부드러운 부츠를 신은 사람들에게 그래 당신 잘 살고 계십니까? 하면 몇 명이나 “예”하고 대답할까. 예나, 제나, 보리밥 먹던 때나, 쓰레기통에 음식물을 버리게 된 요즘에나 한 평생을 산다는 것은 녹녹치 않은 것이다. 어찌 보면 먹는 문제 해결이 인생살이에서 제일 쉬운 것도 같다. 어린 내가 경험했던 그런 클라식한 고생살이는 가족 구성원들 간에 눈물과 애정을 보태주는 역할마저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한 생애가 치르는 고통을 팔고(八苦)라고 하는 불교의 고통론를 보면 생노병사의 ‘기본고’에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의 네 가지가 더해져 있다. 세상에 태어나 사느라고 고생하다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기본이고 그 위에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고 끔찍하게 미운 사람과 만나고 갖고 싶은 것 갖지 못해 애달캐달하니 윤회하며 떠도는 삶 자체가 그저 고통 덩어리라는 것이다. 이것을 동사섭에서는 <있다-좋다-싶다-썅> 이라는 번뇌 고리로 말하고 있다. 추운 겨울이라는 고생살이를 벗어나 세계 7, 8 위의 생활수준을 누리면서도 그다지 만족스러워 하지 못하고 늘 무언가 뒤숭숭한 것은 바로 <있다-좋다-싶다-썅>의 번뇌 고리에 걸려 허우적대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의미 있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인생을 의미로 채워주는 가치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가치를 선택하든 그 가치에는 즉시 안티 가치가 따라붙었고 그에 따른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마치 갈등의 폐쇄 회로를 뱅뱅 도는 것이 인생살이 같았다. 그 갈등이 첨예할수록, 말하자면 불행할수록 더 정의로운 삶 같기조차 했다. 세상살이가 정말 쉽지 않았다. 세상은 문제 투성이었다. 텔레비전은 매일처럼 기괴한 뉴스들을 쏟아냈다. 환경 오염, 교육 문제, 계층 갈등, 청소년 문제, 노인 문제…. 세상은 재미도 없었고 갈수록 아무런 희망도 없이 앞길은 보이지 않는데 마냥 어디론가 내달리고만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 동사섭을 만났다. 개념이전이라는 가르침을 만났다. 함양 행복마을 뒷산을 오르내리며 그 개념이전을 곱씹고 있었다. 개념이전, 개념이전, 개념이전…. 초여름 무렵의 어느날, 그것이 열렸다! 개념이전! 그랬다! 나의 의미라는 것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고내가 자의적으로 채택한 잣대에 불과 했다! 도대체 이 우주에 애시당초 무슨 개념이 , 무슨 가치라는 것이 있었는가 말이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무엇이 길고, 무엇이 짧은 것인가. 50 센티는 긴가 짧은가? 내 기준이 일 미터이면 그것은 짧은 것이고, 내 기준이 십 센티이면 그것은 긴 것이다.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경계선은 오로지 내 머리 속에나 있는 순전히 제멋대로의 기준이었다! 그것이 확연히 이해되는 순간 , 내 머릿속을 온통 싸움판으로 만들고 있던 갈등들이 그야말로 봄눈 녹듯 사라졌다! 벗어날 길 없던 폐쇄 구조가 단번에 터져버린 것이었다!

화들짝 놀라 깨어나 보니 아, 사람만 그런 꼴로 살고 있는 것이었다. 숲 속의 모든 식구들, 나무, 풀, 벌레, 새들은 그저 그냥, 아무렇지 않게, 그냥 숨쉬면서 산들대고, 지저귀고 꽃을 피우며 살고 있었다!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숲 속을 마구 뛰어다녔다. 내 손가락 끝끝마다 이 세상의 본래가 느껴지는 듯 했다.

갈 길을 몰라 헤매던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자신과 주변을 스산하게 만들던, 아, 그 혼란이, 비틀대던 발걸음 하나하나가 오늘을 이끌어낸 보석같은 스승들이었다! 숲속에서 맛본 그 놀라운 이해는 그 동안의 고통을, 아마도 세세생생의 고통을, 빛나는 스승으로, 지고한 축복으로 변하게 한 것이었다. 묶여있는 고통이 없었다면 지금 이 해방의 환희를 어찌 맛볼 수 있었으랴!

그렇다. 고통은 그 고통을 넘어설 때라야 비로소 그 가치를 발한다. 고통을 넘어서지 못하면 고통은 끝끝내 참으로 고통스럽기만 할 뿐인,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뿐인 저주로 남는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고통은 그 고마운 존재 이유, 행복과 해탈을 행복감과 해탈감으로 살아나게 하는 더없는 축복이라는 존재이유를 찬란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고통을 끝내 고통으로 남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을 온통 축복으로 화하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마음, 이 신비하고 신비한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글. 선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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